(p229)가끔 몸싸움을 벌이면 어른들은 깜짝 놀라 뜯어 말리기 바쁘다. 아이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를 하면서 커야 하는데 일상 속에서 자주 저지당하고 억압받는다.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몸으로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처음부터 막아 관계 단절이 생기기도 한다.
(p229~p230)거친 몸싸움이야말로 아이들한테 꼭 필요하고 여러 어려운 상황이지만 허용해야 할 중요한 놀이다. 기다리면서 가까이 지켜보면 아이들의 거친 몸싸움 놀이라는 것이 어떤 선을 넘고 있지 않음이 보일 것이다.
느낀점:
두 형제의 놀이에는 쫓고 쫓기며 적이 되였다가 또 같은 편이 되여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아이의 놀이에는 엄마라는 중재가 있는 공간에선 그래도 자유롭운 편이고 놀이 시간이 그래도 길게 이어지는 편이다. 문제가 생겨기거나 씩씩거리며 전쟁이 날듯 싶다가도 이내 웃으며 상황 종료도 되고 가끔 대장이니 따르라는 지시도 잘 따르기도 혹은 싫다는 상대의 의견도 타협도 하다가 이내 그래! 하며 받아들어 놀이가 이어져 간다. 그것도 부모의 중재나 개입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다른 친구나 어른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 놀이는 아니 쫓고 쫓기거나 몸싸움 놀이는 대부분 교양있는 놀이로 바뀌게 된다. 난감할때도 있고 관계가 편한 부모사이라면 서로 “ 괜찮아요~ 놀게 둬요~” 이렇게 기분좋게 부모의 타협부터 이어지고 아이들의 몸싸움 놀이가 허용되는게 되부분이다. 대부분 또래 부모님도 이런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놀이 태도가 아이들의 관계를 이래저래 조종하고 관여하고 있다니 허용이란 한참 먼것 같다.
몇일전 작은 숲놀이터로 친구들이 왔고 인사도 놀이도 다양하며 모두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 진행된 굉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중 청솔모의 죽음이 정성스러운 아이들의 안식처 만들기로 이어지며 그순간 모두가 하나가 되였다. 보여주려고 다시 파해치려는 친구와 그걸 지키려는 아이가 순간 격하게 몸싸움이 이어지고 겨루다 쫓고 쫓기며 울고 웃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엄마들의 지켜봄은 당황스럽고 기다림이 참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마무리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중요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청솔모 무덤을 지키려고 동참했을뿐이였고 웃는건 도망가는 친구와 울며 쫓고 있는 두 친구의 놀이가 재밌어서 웃었다고 한다.
엄마들의 성장이 더 큰 하루고 배움의 하루였던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돌보고 관리하는 능력이 있다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잘 해결하고 놀이는 이어갈것이니 어른들이여 나대지 말자라고 말하고 싶다.
(p238)그렇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의 어려움과 고민에 사로잡힐 틈이 없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마당과 골목에 쏟아져 나오는 동무들과 누나 오빠 언니 형들과 어울려 놀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해가 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 와 밥 먹고 저녁에 또 나가 놀다가 돌아와 코 골며 자기 바빴다.
(p242) “아이들이 놀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바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한껏 제공하고 그것을 아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리라. 놀이가 치유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53)아이를 풀어 줘야 우리도 풀려난다.
우리가 해방돼야 아이도 해방된다.
(p254)
1. 아이는 한가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아이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3. 아이는 함께 놀 수 있는 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4. 놀 틈, 놀 터, 놀 동무가 있어도 허용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5. 하루 두세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습니다.
느낀점:
읽다보니 내가 어렸을때 뛰여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내 친구와 우리 동네 구석구석 보이는듯 하며 행복하네요. 온도와 바람과 냄새가 기억날듯 따뜻한 햇살과 햇살피해 동네 큰 버드나무 아래 모인 어르신들까지 영화에서 나올것 같은 그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로 여행간듯 합니다. 오랜 즐거움의 추억이 아직 기억나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 童年으로 기억될가 아이 키우는 저로도 감히 상상이 않가고 뭔가 불안과 안쓰러움이 든다. 골목도 친구도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 안전한 공간도 없으니 대체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지 마음이 급해진다. 그럼 내 기억의 놀이라도 그 기분이라도 즐길수 있게 아이들과 밖으로 강으로 산으로 많이 다니며 그곳에서 놀이 친구가 되여주고 또래 같이 할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정말 감사히 초대해서 같이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 다짐 해본다. 일생에 귀한 그 童年이 가기전에 내가 지금 해줄수 있는것 부터라도 허용하고 함께 해야겠어요.
첫째가 만 3살 둘째가 8개월때 저는 친구들 동원해 글램핑을 했었다 갑갑한 집안이란 공간에서 벗어나서 숨 좀 쉬고 싶었다. 차없어 친구부부가 분당에서 산본까지 마중와주고 저는 애들과 친정엄마 동원해 산본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합류했다. 험난한 여정이라고 과언이 아니지만 내욕심인가 싶었지만 도착해서 놀때는 참 잘 왔다 싶었다. 36개월된 첫째는 캠핑장을 여기저기 이웃집 방문도 척척 하며 통제불가인듯 했지만 손잡고 일일이 따라 다니며 구경 시켰다. 아파트에선 이집 저집 구경이란 불법일수 있지만 캠핑온 새 이웃들은 마당에서 서로 오픈되였으니..계곡에 8개월된 아기는 외할머니가 기저기를 벗기고 엉덩이도 다리도 발도 물에 담궈보게 앉아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게하며 자연을 만끽 시켰다. 밥도 잘 먹고 보채는것 없이 마당에서 놀던 첫째는 저녁 9시쯤 친구들과 같이 합숙함에도 이내 잠들고 “엄마 밖에서 놀다 바로 들어와서 자고하니 좋아~”한다. 난 그기분을 알듯 했다. 8개월 둘째도 통잠을 자는 덕분에 늦게까지 난 친구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그기억이 힘들지만 참 좋은 추억이 되여 아이가 기억되길 바란다.
어렸을때 일상의 놀이생활이 지금 아이에겐 바쁜 부모의 한번쯤 이탈로 채워진다는게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여 아이와 같이 하기 바랍니다.
(p261)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자유놀이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사에게 이른바 '자유'가 없는데 어떻게 교사가 아이의 '자유놀이'를 옹호할 수 있겠는가.
(p264) 비고츠키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와 아이, 아이와 부모, 아이와 교사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없다면 추상의 세계로 나가는 능력은 생기기 어렵다. 그래서 '첫 번째 놀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놀이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 가까이 장난감과 교재교구가 많을수록 실내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유아교육은 실내에서 실외로, 교사의 선택에서 아이의 자유놀이로, 장난감에서 놀잇감으로 대 전환이 절박하다. 이렇게 서서히 꾸준히 '자유놀이'라는 유아교육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만약 유아와 함께 '자유놀이'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유아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개정 누리과정은 정처 없이 떠돌 것이다.
느낀점:
'놀이 밥'을 잘 지어 밥상을 차리고 이웃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들이 몇일전 초1때 반에서 친구들과 동서남북을 접어주었다고 한다. “만들수 있는 아이는 자기뿐이였나 보다”고 말을 하기에 반에서 만들기 수업을 했었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와서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그럼 너는 언제 배웠냐고 다시 물었다.
어린이집 다닐때 함께 차량 탔던 친구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도움을 받아 배웠던걸 초등학교가서 도움 받은걸 배풀었다고 한다.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노래인듯 반복하며 중얼거리는데 기특했다. 코로나로 몇번 등원하지 않아도 초1 추억엔 어쨌던 걱정과 달리 아이는 그래도 작은 사회관계안에서 자기의 선한 관계를 연결하고 있었다는것에 위로되는듯 했다.
칭찬까지 이어졌더니 즐거운지 멋적은듯 하더니 동생에게도 하나 만들며 동생은 손이 작으니 좀 더 작게 만들어야 하기 편하다고 설명까지 더 해 준다. 눈여겨 보고 인정하는 눈길이나 칭찬만으로 아이는 자신감있게 세상을 향하는 힘찬 한걸음 한걸음 잘 내딛는다. 바쁘더라도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감정에 공감해주는게 사랑이고 그게 이 사화에서 양육자의 보호의 태도이기도 한듯 하다.
별거아닌것에 너무 오버스러울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소한것이 큰 감동을 주는것 처럼 말입니다.
(p269)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때 '끼어들기'나 '멈추기'보다는 '바라보기'나 '이어주기'나 '함께하기'의 길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이끌기를 멈추고, 놀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가꿔 주고, 놀이를 이어주고, 아이들이 잘 어울릴 때 빠지고, 아이들이 같이하자고 할 때 함께하는 열린 태도 그 어디쯤일 것이다. 아이와 놀려면 한없이 유연해야 한다. 아이들이 나고나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 것이다.
(p279~p280)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시라. 어려서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결코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놀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이 굳고, 놀이를 빼앗기면 아이의 몸은 무너진다. 하지마! 만지지마! 가지마! 조심해! 위험해! 올라가지마! 뛰지마! 울지마! 마! 마! 마! 이렇게 아이의 놀이와 자유가 멈추면 아이의 피도 숨도 멈춘다. 그 길로 정녕 가야 하는가.
(p293) 부모와 아이는 타인이다. 타인인 아이를 향한 강요는 부모 스스로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좋은 부모는 가장 적게 요구하는 부모이고, 진정 좋은 부모는 요구하지 않는 부모다. 부모가 물러설 때 아이는 나아간다.
(p295) 우리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퍼붓는 공격과 비난 때문에 받을 상처의 크기와 종류는 갈수록 커지고 날카로워지는데 아무도 아이들에게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일어설 힘을 기를 것인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숨이 멎고 막힌다.
(p299) 게임중독은 아이들이 잘못만으로 볼수 없다. 그것은 '놀이밥'을 먹어야 할 아이들의 기본권을 오래도록 가로챈 어른들이 할 말이 아니다.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는 아이들은 불편함과 간섭과 억지가 설령 있더라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회복이 된다. 해로운 것들로 가득 찬 환경 속에 있어도 놀이밥을 먹는 아이들은 건강하고 명랑하다. 놀면 즐겁고 즐거우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웃음과 즐거움은 많은 것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게 돕는다. 놀이는 웃음과 재미와 즐거움을 만나는 일이다.
어린이는 불안과 우울과 좌절에서 벗어나 자기통제력, 자기결정권, 자기회복력, 자기적응력을 높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이 삶과 생존의 긴요한 요소다. 가장 중요란 것은 놀이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을 응축하는 데 있다.
“놀이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몸에 담는 과정'
(P324)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환경의 실제적 민낯은 COVID-19로 비대면이 강제된 현제 상황과 견주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놀이터에 어린이가 없는, 나가도 함께 놀 친구를 대면하기 어렵기는 COVID-19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이는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가려지고 빼돌려지고 있었고 어린이가 서로 만나기 어려웠기는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p325) “어린이는 앞서 진정 대면하고 놀았는지. 우리는 어린이가 정말 대면하고 놀기를 바랐는지” 물어보는 것에 시작하는 것이다. 배움도 만남이고 놀이도 만남에서 시작한다.
(p328)혹독한 고립 속에서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허용적 놀이환경이 무엇인지 냉철히 살피기를 간절히 청하며, 어린이가 이 복잡하고 단절된 세상의 한 켠에서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라는 행운과 만나 우정을 쌓기를 희망한다. 어린이 가까이 계시는 놀이벗들에게도 권한다.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잃으면 공감하는 힘도 잃게 된다.
(p331) 위험이 자유로운 놀이활동을 가로막고 있을 때, 놀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갈 길을 몰라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위험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공포에 어린이의 놀이와 자유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마주할수록 어린이는 자신을 지키고 돌보는 힘을 가지게 된다. 아이안에 그 힘이 있다.
비대면만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의 가치 또한 양립해야 한다. 위험이 있지만 유익함이 크고 절실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고 그것은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일상적이고 이동할 필요가 없으며 특별한 놀이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한 놀이 장소인 '홈과 하우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어린이 가까이서 놀이환경을 고민하는 양육자와 보호자에게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홈과 하우스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인데 이 점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COVID-19와 지속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홈과 하우스가 새삼스럽게 놀이터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227)놀면서 숱하게 지고 이기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언가에 좌절했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행복을 찾아가려면 행복할 때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P.229)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몸으로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처음부터 막아 관계 단절이 생기기도 한다.
(P.240) 배운다는 것이 아직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앞세우는 가르침은 살아 움직이고 바뀌는 세계와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막일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과 또래의 동무,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P.269)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때 ‘끼어들기’나 ‘멈추기’보다는 ‘바라보기’나 ‘이어주기’나 ‘함께하기’의 길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P.279~280) 어려서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결코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놀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이 굳고, 놀이를 빼앗기면 아이의 몸은 무너진다. 하지마! 만지지마! 가지마! 조심해! 위험해! 올라가지마! 뛰지마! 울지마! 마!마!마! 이렇게 아이의 놀이와 자유가 멈추면 아이의 피도 숨도 멈춘다.
(P.293) 우리는 어려서 놀았던 힘으로 오늘을 살아 내는 거다. 놀며 만났던 무의미한 행동과 자유의 기억과 그 속에서 길렀던 몸과 마음의 힘을 조금씩 꺼내 이 어려운 오늘을 사는 거다.
(P.305)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면 아이가 마음껏 놀며 결대로 성장할 수 있게 놓아 주시라. 당신과 내가 직장의 개가 아니듯 아이 또한 당신의 애완견이 아니다. 나와 당신 또한 놀이가 키웠지 않은가.
* 느낀점
월요일 정왕동 곰솔누리숲에 워커2기 놀이공동육아팀 아이들과 모여서 놀게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놀이를 하다가 죽은 청설모 한 마리를 발견 하게 됐다. 용감한 아이들은 만지기도하고 손으로 들고 장난을 치기도하고, 힘을 모아 청설모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 청설모 무덤 하나로 힘겨루기는 시작 되었다. 지키려는 아이들과 무덤을 부시려는 아이의 몸싸움이 일어나고 ... 엄마들도 용기를 내서 기다려주기! 아이들도 엄마들도 처음 격는 상황 이였다. 실패와 좌절을 넘어서는 수많은 상황과 만나게 해주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회복의 힘을 길러준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막상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게 해야 하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참 어려웠다. 가까이 있는 동무가 나와 생각이나 표현이나 몸짓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놀면서 깨우친다. 놀다 보면 서로 다르니까 조절하는 것을 배우고, 조절하다 보면 자기 고집도 돌아보고 가진 것도 나눈다. 놀이에 끼워 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힘겨루기가 내 감정으로 흔들지 않고 기다려 주기란 참으로 힘든 것 같다. 억울해서 잡으려는 아이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아이를 보고 무덤을 지키려고 서있던 아이들은 웃기까지 하고 있다니... 아이들은 잡으러가고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이 그저 웃긴 놀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어른인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역시 아이들은 놀이로 소통하는구나!’ 많은 생각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이였다. 즐거움을 느껴봐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며, 많은걸 허용해 준다고 내 스스로 착각 하고 있진 않았는지. 만지지마! 조심해! 울지마!를 입에 달고 있진 않았는지...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
*질문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 ‘바라보기‘ , ’이어주기‘ , ’함께하기‘ 길을 잘 찾고 계신가요?
(P.166)놀이기구를 놀이터에 사 넣는 데 큰돈 쓰지 말고 황토 한 차 부어 놓고 수도꼭지 하나 달아 주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변화를 줄 수 있는 놀이터이지 놀이기구가 촘촘히 들어선 놀이터가 아니다.
(P.182) 놀이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데코레이션이다. 생태놀이터 곳곳에 장식이 넘쳐 난다. ‘나무소리터’, ‘곤충과 조류호텔’, ‘물레방아’는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P.185) 놀이터 콘셉트와 기능을 선전할 것이 아니라 진정 아이가 그곳에 와서 어떤 ‘사회적 소통’을 할 수 있는지 깊이 살펴야 한다.
(P.186)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놀 수 있어야 한다.
(P.208) 놀이터는 어린이가 ‘실험하고 도전’하고 상상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장소를 베껴서 만들면 그곳에서 어떤 실험과 도전과 상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P.221)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 모두가 놀이터여야 한다는 말이다.
* 느낀점
용인 만골근린 공원에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규모가 큰 미끄럼틀이 많아 블로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무척 좋아 할 것 같은 생각에 아이들과 가보았다. 또 오자고 할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한참을 땀까지 흘리며 놀던 아이들이 주변 나뭇가지를 줍고 땅을 파고 작은 물건을 숨기고 그 많은 놀이기구들 옆에 두고 다른 놀이를 한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놀 터와 놀 친구만 있으면 되는 구나 깨닫는 순간 이였다. 놀이터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외투를 벗고 있는 건 우리 아이들 뿐 이였다.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그 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데 우리 아이들만 땀을 흘리나 생각하며 주위를 더 살펴보게 됐다. 다른 아이들이 외투를 벗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아이들이 놀 시간을 주지 않는 부모들,10분 20분 만에 다들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고 화려한 놀이터가 아닌 놀 터, 놀 친구, 놀 시간이 충분 하면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놀이가 된다는 걸 다시 느끼며 나 또한 한 뼘 성장 한다. 큰 공원보다 동네 아담한 공원을 더 좋아하는 이유를 더 잘 알 것 같다.
* 질문
“가장 좋은 놀이터와 최고의 놀이기구는 다름 아닌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아이들(또는 나)에게 넉넉한 놀이 시간을 주고 계신가요?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변화를 줄 수 있는 놀이터이지 놀이기구가 촘촘히 들어선 놀이터가 아니다.(p166)
어린 시기에 맨발로 흙과 모래를 밟을 수 있게 하는것이 면역과 운동능력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놀다가 더러워지고 소란스럽고 어지르고 다치는 게 놀이다.(P169)
아이들은 왜 놀이터에 오는지? 왜 놀이터에 올 수 없는지? 왜 놀이터에 왔다 서둘러 가야 하는지? 쉽고 단순하게 볼수 있어야 한다.(p179)
아이들은 흙이나 모래 가까이에서 두세 시간은 거뜬하게 파고, 옮기고, 덮고, 쌓고, 뚫고, 길을 만들고, 물을 부으며 온갖 놀이를 한다.(p187)
놀이기구는 흙산 하나로도 충분하다(189)
'놀이기구'위주의 놀이터에서 이제 '자유놀이' 위주의 놀이터가 필요한 까닭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놀이 위주의 놀이터라는 곳은 노는 시간이 허용되는 장소일 것이다.
'놀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놀이기구'이기 때문이다.(p206)
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이 즐겁고 재미있고 기쁜지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놀이이니 교육과 무엇이 다르다 할까.(p216)
계획가들은 흔히 하는 놀이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필요한지 깨닫지 못하는 듯싶다. 또 장소와 설비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장소와 설비는 유용한 부속물일 수 있지만, 오직 사람만이 아이들을 키우고 문명사회에 동화시킬 수 있다.
제인 제이콥스의 말대로 최고의 놀이와 놀이터는 친구이고 부모이고 이웃이고 거리다. 어찌 보면 아이들의 놀이실종은 친구와 부모와 이웃과 거리의 실종일 수 있다. 달리 말한다면 만약 놀이결핍과 놀이실종을 줄일 길을 찾는다면 그것은 놀이도구나 기구장난감 또는 기기가 아니라 관계와 친구와 거리라는 자명한 결론에 다다른다.(p218~p219)
재미없는 놀이는 일이고
재미있는 일은 놀이입니다!(p220)
놀이터는 필요 없다.
아이에게는 이 세상 모두가 놀이터여야 한다는 말이다.(p221)
느낀점:
동네 놀이터는 그냥 아이들이 차량을 피해 가짜 놀이를 하는 잠간 허용된 터(공간)일 뿐이다. 가끔 그 놀이기구마저 뛸 공간을 방해하는 장애물 같은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칠더라고 장애물 없이 질주하고 뒹굴수 있는 곳곳에 'NO' 'STOP' 문구가 없는 허용된 그런 놀이터였으면 더 좋았을것을...아쉽지만 내가 사는 동네 놀이터 모습은 아직 그렇다. 아이가 어릴때 난 그게 당연한 풍경이며 그런건가 했다.
어린 첫째가 어린이집 하원하고 집앞 놀이터에서 잠간 놀고 집으로 가곤 했다.
첫째는 보고싶던 엄마와 잠간 이것 저것 놀이기구를 좀 놀고 나면 놀이터 밖에 숲길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숫가락이나 빨대로 놀이를 한다. 작은 숫가락으로 흙과 모래를 모아서 빨대를 꽂거나 부러진 나무 가지를 꽂아서 놀이한다. 가끔 큰 애들이 쏘다 떨어진 비비탄알을 주어 숨기곤 하며 집에 올때는 주머니에 담아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 옆엔 어느새 또래 애들이 모여 같이 놀기 시작하고 그 아이들중 꽂아둔 빨대를 휙 뽑아 도망가기도 한다. 지켜려는 아이에게 그아이는 손을 뻗고 볼을 꼬집기까지 하며 빼앗어 도망간다. 동네 같은 원에 다니는 아이였다. 세상 귀한걸 잃은듯 울며 쫓아간다. 울음 소리를 듣고 뺏은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마중하며 달려오고 빨대를 돌려주지만 그아이가 또 울어버린다. 나는 지켜보며 내아이가 그 빨대를 받아서 울음을 그치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는 이렇게 자기 아이를 달랜다.” 더러운데 그게 뭐라고 빼앗아 도망가!” 더러운걸 만졌다고 짜증스런 그 표정을 난 분명 봤다. 그 아이와 엄마는 내 아이에게 아무말도 하지않고 돌아서고 돌아오는 내아이는 저를 올려다 보고 저는 그냥 웃어주고 이내 놀이는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 감정은 슬펐다. 난 아이가 그냥 더러운게 아닌 놀이감을 지켜낸게 대단했고 다음에 볼을 꼬집으면 아프지않다고 참지말고 손을 뿌리 치라고 가르쳤다. 난 그때 그 기분이 잘 잊혀지지 않을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 내아이는 놀고 있었을 뿐인데 한아이는 놀지 못했구나 부모가 놀지 못하게 했다는걸 알았으니 ...그리고 놀이는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다는걸 알고 그때 그 울음도 놀이일 뿐이였다니 이젠 맘이 불편하지 않다.
아이는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 다음은 속도를 내면서 뛰여보려 하고 다음은 내리막 오르막 경험을 즐긴다. 다음은 다리를 높이 들고 계단을 오르거나 폴짝 폴짝 뛰는 경험도 하며 그렇게 하나하나 더 자극적인 모험을 즐긴다.
놀이터 미끄럼을 계단을 밟고 올라가 미끄러 내려오는 사용방법을 가르침도 잠시 발로 디디고 손으로 당기며 아이는 미끄럼을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좀 더 크면 올라가서 내려올때는 눕거나 슈퍼맨하며 엎드려 내려온다. 놀이기구 위로 올라가고 그네도 서서 타고 ...그때부터 제지를 받는다. 그때부터 놀이터는 아이에게 그냥 놀 친구를 만나는 장소가 되여가다가 친구가 없으면 몇번 뛰고 오르다 다른곳으로 가자고 한다.
두 아이의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동네를 벗어나 공원으로, 산책길로, 심지어 주말 조금 한가한 공단의 길을 아이와 함께 다니기도 한다. 새로운 자전거 도로를 경험하고 사계절 길옆에 바뀌는 모습을 경험하고 그렇게 놀이터를 확장해 갔다. 가끔 자전거 앞바구니에 고구마 수확하는 할아버지가 주는 고구마를 넣고 자전거 손잡이를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놀이하다보면 의외의 즐거움에 다음 출발이 기대된다. 오늘은 애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올지...
몇일전 올겨울 들어 두번째로 많은 눈이 내렸다. 급히 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눈놀이를 나갔다. 저녁시간이 되여가는 시간이라 대부분 좀 큰 아이들만 있었고 어른들은 차에 눈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지상에 주차라 놀이터로 가려고 했는데 현관을 나서는 즉시 아이들은 눈을 만지며 놀았다. 그야말로 집을 나서는 준비부터 이미 놀이는 시작되였고 현관을 나서 눈이 보이는 그곳이 놀이터였던 것이다. 1층 어린이집 선생님이 눈을 쓸어내고 경비 아저씨들도 눈을 치우느라 바쁘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아두고 쓸어두는 눈위에 소파에 앉듯이 앉아버린다. 심지어 둘째는 앉더니 눈으로 자신을 덮으라고 주문을 한다. 눈을 담고 모으고 밟느라 바뻤다. 놀이터가려던 계획은 잠간 접고 의자위에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냥 일단 놀기로 했다.
한참후 오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고 우린 놀이터를 가려다 이번엔 엄마가 생각이 바뀌였다. 아파트 뒤에 숲길로 가자 했다. 큰애가 잠간 의아해 하는데 숲길에 도착하자 애들이 뛰고 신발을 끌며 난리났다. 누구도 점령하지 않은 터,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그 놀이터를 우리가 찾아냈으니 말이다. 가로등이 켜지고 눈이 반짝반짝 하고 고요하기까지 하니 이 분위기 아이들은 낯설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걸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사진찍고 나무가지 흔들어 보고 누구도 밟지않는 눈위에 발자국 남기며 동영상도 찍어보고 .....그렇게 놀터를 찾고 놀아이들과 난 우리들의 놀 시간을 채워갔다.
그렇게 놀이터는 놀이기구가 딱히 필요없고 아이 자유롭게 자국을 남기며 뛰거나 뒹굴수 있는 공간이 최고의 놀이터이였던 것이다. 엄마 사랑해~~아이들이 외치고 그 외침엔 난 “여기 정말 재밌다”라고 들렸다.
그렇게 예정했던 놀이터로 가는 길에 우리들은 새로운 놀이터를 경험하고 놀고 들어가는 아이들을 뒤로한채 우리들의 놀이는 한참 더 이어갔다. 오늘은 딱히 저녁을 7시에 먹을 생각이 누구도 없었다. 엄마도 말입니다. 놀이밥을 먹고 있으니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었다.
놀고 싶어 호소하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놀터를 넓혀주고 놀 시간을 충분히 함으로 놀터, 놀시간을 더 많이 허용해주자. 아이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놀며 숨쉬며 즐겁게 살기 바라는 마음은 같을거라 생각합니다. 놀며 즐거운것 재미있는것 기쁜것을 알고 또 그것을 찾기위해 경험하고 모험하며 잘 성장 할거라 믿어봅시다. 그게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교육자로서 또 사회에서 해줘야할 책임이고 사랑이고 또한 인간에 대한 존중인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커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욱더 아이의 놀친구가 되여 함께하는 시간, 함께 할수 있는것을 충분히 즐기며 그 관계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재밌는 삶을 경험하자고 전해봅니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이자 최고의 놀이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 엄마로써 주부로써 부담감을 내려놓고, 그냥 편하게 마음가짐을 바꾸고 심심해 할까봐 걱정하지 않고 일상의 가정에서 삶 자체가 가정의 평화로움, 티비 보고 싶어 하면 난 책을 읽을 거라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둘이서 논다. 내가 참아내면 또 한 단계 성장 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허 진 :
환경에 따라 아이들이 좋아하면 그게 최고의 놀이가 아닌가
본인의 최고 놀이는 워커2기들과 공동육아의 놀이 단톡방 자체가 요즘의 큰 즐거움이다
천선희:
코로나로 인해 같이 있는 일상이 그냥 놀이가 된 듯 하다. 함께 사는 집이니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같이 하는 일상들이 늘어났다 분리수거도 모두가 같이 하는 일중에 하나다 (함께하니 더 빨리 끝나고 좋다라는 칭찬과 함께 하니 서로 즐거운 것 같다) 말로써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읽기도 내 시간 갖는 것도 미안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편이다.
책읽기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2021/01/ 15 김선녀 함께 하고 싶은 문장: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성장한다는 것이 뭐 별것인가. 제 몸 하나 건사하고 부릴 줄 아는 것이다. 동생을 돌보고,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어른들 따라 작은 힘이라도 보태다가 장난도 치고, 그것이 다 놀이 아닌가. 아이들한테는 놀 권리와 함께 일할 권리도 있다. 아이한테 알맞은 일을 거들 수 있게 하자. 아이들은 세상을 소소한 일과 놀이를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데 어른들은 지식만 억지로 먹이려 하니 아이들이 힘들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정말 최고의 놀이다. (P122) 아이들 놀이는 진지하고 지극하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언제나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들만의 작은 우주를 날마다 새롭게 빚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려면 아이들한테 아주 긴 놀이의 시간이 허락되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하면 역할놀이와 상상놀이를 오가며 놀이의 꽃을 피운다.(P127~P128) 진짜 놀이란 한 번 또는 하루에 끝날 수 없다. 그리고 쉽게 치울 수 잇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한가롭고 긴 시간이 필요한다. 놀 틈을 꽉 막아 놓고 아이들이 노니 안 노니 하는 이야기가 내게는 그래서 거짓으로 들린다. 아이들이 이제 조금 놀려고 하면, 상상을 펼치려면, 막 놀이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면, 그만 정리하라는 말이 들린다. 그것은 아이들 놀이를 피괴하는 일이다. 놀이가 상상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결국 놀이의 꽃인 '상상놀이'는 서두름과 재촉 속에서는 피지 않는다.(P128) 놀이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오롯한 재미와 경지를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한 놀이에 오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P136) 가까운 사람이 불편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잘 노는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천천히 알게 하자.(P144) 이처럼 노래보다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고상하게 말하면 춤이고 달리 말하면 몸짓이고 몸부림이다. 아이들한테는 그것이 바로 놀이다. 이것이 이야기와 노래와 놀이라는 세 가지 장르의 관계다. (P150) 아이들의 놀 권리를 아이들의 가장 앞선 인권으로 명기할수 있는 것이 진정한 진보교육의 출발이다(P154) 혁신과 대안이란 배움과 놀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P154) 누가 내게 왜 놀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웃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 왜 놀이운동을 하냐고 물으면 웃을고 한다고 말한다. 웃음이 없는 자유놀이는 가짜 놀이다.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학습을 놀이로 포장해 아이들을 속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다가 웃기도 하고 또 울기도 한다. 그렇다. 웃음과 울음이 있어야 진짜 놀이다.(P156~P157) 놀이 선택의 결정과 놀이환경 선택을 성인이 다 해놓고 '자유놀이'가 우기는 희극은 인제 그만 봐도 될 때가 되었다. 지금 유아교육 현장에 프로그램화된 유사 자유놀이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촉각을 곤두세워 주의하고 경계하고 뿌리치자.(P157)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교묘하고 치밀하게 조종하려는 마음'을 여러 선량한 양육자로부터 자주 목격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말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는지 않는지 말이다.(P159) 양육자가 그루밍 양육과 전연하는 곳에 자유의 바람은 아이에게 불고 그곳에 놀이의 꽃은 핀다. 모든 것은 다 사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P160) 느낀점: 보호자 양육자라는 이름으로 나는 자녀에게 내 몸 하나 건사하고 부릴줄 아는 훌륭한 어른인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보게 됩니다.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엄마는 서툴어라고 말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가? 어떻게 하고싶어? 하고 더 많이 물어보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함께 성장해야겠다고 생각 해봅니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이자 최고의 놀이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때, 그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아이가 자유롭게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즐기고 살 능력을 키우는 힘이 있으니 믿어 주렵니다. 모든것을 더 해주려고 더 더 더...그냥 편하게 내려놓고 서두르지말고 재촉하지 말고 그냥 그 놀이 세상에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하며 이어가도록 시간을 주고 공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아이에게 불편한 사람아닌 편한 한 사람이 되려고 말입니다. 그 공간에 내 삶도 있고 추억도 함께 하며 웃고 울고 즐기는 삶이 될것이며 아이는 그렇게 잘 크고 자기 몸 하나 잘 건사하는 어른이 될것이라 믿어봅니다. 아이가 어느날은 신발을 닦고 어느날은 설겆이를 하며 어느날은 방도 닦습니다. 시킨건 아닌데 심심했나 봅니다. 그냥 엄마 아빠 하는 일, 하는 놀이를 따라 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잘때는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 하고 토닥토닥 인사하고 잡니다. 그 수고의 의미을 알고있다고 말하듯이 ... 오늘은 책을 읽을거라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알겠다며 잠간 놀이하더니 책을 읽는데 기웃거리며 기다리더니 않되겠는지 각자 방해는 하지않을테니 나도 책을 같이 보고 싶을 뿐이라는 눈치를 주며 한글 모르는 둘째가 그림책을 번지고 첫째가 초등학생백과사전을 읽으며 심지어 누워보는 저의 불량독서 행동을 따라하더군요. 요즘 그렇게 놀아 주려고 뭘 해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저를 찾다보니 아이들이 기다려도 주고 티비를 켜주지 않는 날이 많아지니 두 형제의 상황극이 꽤 재미있게 전개되며 그 놀이 이야기에 저 또한 일을 하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간에 잠간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편해문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내가 현실을 경험함에 무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과 행복감이 일상의 활력소로 바쁜 일들도 좀 척척 잘 해결하는듯 하는 느낌도 드네요. 놀라운 변화이며 의도하려는것도 없는데 큰 선물인듯 합니다. 질문: 최고의 놀이를 경험한적이 있나요?
저 또한 편해문선생님 어릴적놀이를 읽으면서 나의 어릴적엔 어떻게 놀았는지 다시한번 되짚는시간이 되었어요.가끔씩 아이들이 엄만 뭐하고 놀았어?그건 어떻게해?물어볼때면 참 안스럽기도한거같아요..예전처럼 아이들이 놀지못하는아이..방법을 모르는아이등 저 또한 놀이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시간이 되었어요.
질문에 아이앞에서 얼마나 쉬는지에 대해선 그래도 어느정도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었던 순간부터 점점 나의 시간도 늘어나는거같아요..그러면서 나만의 놀이도 함께할수있는거같구요..
(P.136)놀이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오롯한 재미와 경지를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한 놀이에 오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
(P.143~144) 지금은 아이들에게 놀이전문가 성인이 어떤 놀이를 들이밀기보다는 좀 쉬도록 환경을 가꿔 주고, 이렇게 쉰 아이가 서서히 자유놀이에 기지개 켜기를 기다려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하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원하되 직접적인 진행과 간섭을 최소화하자.
둘.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지는 철저하게 아이들에게 맡기자.
셋. 놀이시간을 여유롭고 유연하게 계획해서 아이들이 쫓기지 않고 안정 속에서 놀이를 풍성하게 가꿀 수 있게 하자.
넷. 학교나 기관이나 단체에서는 놀이활동가의 놀이활동을 평가하거나 감시하지 말고 믿고 맡기자.
다섯. 가까운 사람이 불편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잘 노는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하자.
여섯. 우리는 아이가 놀이를 확장하도록 도와야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일곱. 우리는 놀이의 조연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P.157)웃음과 울음이 없다면 그것을 자유놀이라 부르지 말자. 울음과 울음이 없다는 것은 친구와 놀고 있지 않으며 친구와 만남이 없다는 말이다.
(p.159)보호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말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는지 않은지 말이다.
*느낀점
편해문 선생님의 어릴적 놀이가 정말 신나고, 어깨를 들썩이며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어릴적 놀이가 참 많이 떠올랐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는 나또한 무섭지 않은척 하며 도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9살 딸아이가 엄마는 어릴적에 무얼하고 놀았는지 질문을 자주 한다. 나의 어린시절 놀았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때론 같이 해보기도하고 아이와 공유하는 요즘이다. 나름 아이들이 하고 싶은걸 해주고 많은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호라는 이름으로 말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갖어야겠다.
처음엔 쉬려고 할때 그것도 많이 어색하고 막상 뭐 놀아야지 애들없이 뭘 한다는것도 참 어려웠어요. 심지어 남편이 애둘 대리고 할머니댁갈때 저는 혼자 집에서 잠을 못자 친구집에 가서 푹~~자고 왔답니다.그렇게 너무 오래 혼자 뭘 하는걸 잊어버렸어요.
요즘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 그런 마음보다 난 오늘 뭐할가 뭐하지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먹고 서둘러 설겆이 않고 커피 마시고 생각하고 느긋해지려고 무지 애쓰며 노력했더니 되여지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애들이 저를 봐주고 따라주고 같이 뭘 해보고 그렇게 서로 어울리는 법을 다시 배우며 쉬는법과 노는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십자수 하나를 큰 벽화만한 걸 구매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락이였던것 같네요. 1년을 걸쳐 틈틈히 혼자 이실 저실을 끼워가며 한땀한땀 저만의 고행을 치르고 있었는데 완성하고나니 시간도 지나고 저는 어느덧 그 힘든 시간을 한시간 한시간 잘 이겨냈더라구요~놀이는 정말 스스로 치유의 시간을 가질수 있는 큰 힘이 될때도 있음을 그때는 몰랐네요^^
(P.23) "누가 하자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놀이라 한다." 일의 반대가 놀이고 놀이의 반대가 일이라는 것은 꽤 오래된 오해고 이런 오해 때문에 우리는 놀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고 우울이고 두려움이다.
(P.25)아이들과 놀이가 동무라서 그들 사이에는 오랜 우정이 있다. 우정은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으로 덮인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오랜 동무인 아이들과 놀이 사이에 우정이 꽃피어야 한다.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을 떨치는 방법은 '지금 놀기'다.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그냥 '놀기'다.
(P.26)아이는 하고 싶은 걸 하며 놀 때 가장 잘 배운다. 그래서 배움은 놀다 보면 생기는 기타 등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P.28)놀이는 머리 좋아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을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만나는 일이다.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느낌이 어떤지 알아야 즐겁고 행복한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다. 아이들과 비석 사이에 어떤 인연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비석을 자기 몸처럼 여길 까닭이 없다. 동무가 던지는 비석에 내 비석이 맞아 쓰러진들 감흥도 없다. 이런 것이 억지 놀이다. 다시 말해 민속놀이, 전래놀이를 한다고 해서 그게 놀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비석치기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비석은 ‘나’이기 때문에 고이 쥐고 가서 잘 간직한다. 놀이는 끝났어도 놀잇감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 이게 놀이다.
(P.29)놀이 속에 있는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다. 놀이라는 것은 대부분 혼자 할 수 없고 함께한다. 잘 노는 사람은 아이들을 쥐락펴락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따뜻한 공간과 시간을 가꿔 주는 사람이다.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다.
(P.30) 나와 아이들에게 더 솔직해지자.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불안과 우울을 떨쳐내자. 그렇게 놀다가 어느새 불안과 우울에서 멀어진 당신과 아이를 만나고 싶다. 아이들은 오로지 놀 생각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든 놀고 있다. 한결같이 놀 궁리만 하는 아이가 아직 가까이 있거들랑 이렇게 말해 주자. “괜찮아!”
(P.33) 마구 뛰거나 힘없는 아이들 사이에 있어야 할 마음이 건강하고 명랑한 아이를 만나기 점점 어렵다. 아이들은 얼굴에 명랑이라는 두 글자가 딱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P.34)주의력은 놀이에 흠뻑 빠져 놀아야 생긴다. 아이가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마음껏 놀지 못한 하나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놀이라고 주장 해 왔다.
(P.38)부모가 누구이든, 양육자가 무엇을 하든, 사는 곳이 어디든,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놀이와 놀이공간과 놀이시간에 닿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아이들은 놀이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
(P.40)놀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외로움이다.
(P.49)험한 길을 헤쳐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생기와, 놀면서 만나는 동무와의 우정과 가까운 성인의 말없는 지지가 있어야 아이들은 살 수 있다. 왕따와 학교폭력과 자해와 자살 문제를 놀이와 우정을 제쳐 두고 푸는 길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부디 유아 시절부터 아이들을 빼돌리지 말고 충분히 놀 수 있도록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를 찾아 주자.
(P.93) 놀이가 가지는 힘은 단순히 재미와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된 뒤 살아가는 힘으로 자리 잡는다. 어려서 했던 놀이를 돌이켜 보면 땅에 그어진 금을 밟아 죽고 사는 경우를 참 여러 번 겪는다. 그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음 판에 다시 살아나 실패와 죽음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경험을 하는데,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어른이 됐을 때 삶의 어려움을 이겨 내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반드시 쓰인다.
(P.95)아이들이 놀이를 언제 시작하겠는가. 어른들이 놀자고 할 때? 아니다. 장난감을 사줬을 때? 아니다. 놀이는 심심해야 시작된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좀 놔두자. 좀 빈둥거리게 놔두자. 걸핏하면 이것하고 놀자, 저것하고 놀자, 저기 가서 놀아라, 캠프 가서 놀아라, 프로그램 좋은 거 있더라, 그러지 말고 심심하도록 빈둥거리도록 좀 아이들을 놔두자. 그러면 아이들이 “되게 심심하네. 뭐하고 놀지. 뭐라도 해야겠네.” 이런 마음이 솟아난다. 이게 아이들 스스로 놀이가 시작되는 때다.
(P.97)아이는 엄마아빠와 놀고 싶은데
아이는 동무들끼리 놀고 싶은데
아이는 밖에 나가 놀고 싶은데
비싼 장난감을 사서 가득 안기고
온갖 책을 사주고 게임기를 사주고
어디를 자꾸 가라 하고
스크린을 켜주며 안에 있으라고 한다
사는 것이 늘어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사는 것이 늘어나면 아이들 놀이는 멈춘다
사는 것이 늘어나면 아이들 놀이는 숨는다
돌멩이나 막대기보다 못한
값비싼 그 많은 장난감부터 조금씩 줄여가야 한다
부모가 사다 준 장난감이 아이 가까이 쌓일수록
아이들의 자유는 그 안에 갇히고
(P.98)아이들의 퍼덕거리던 상상의 몸짓은 잦아든다
세상은 사야 한다고 날마다 떠들지만
아이들은 맨손과 맨발이어야 아이들로 자란다
장난감이 적어야 놀이는 시작한다
뭐가 없어야 놀이는 시작한다
심심해야 놀이는 시작한다
적게 사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돈 비린내 진동하는 물신의 세상을 사는
참된 부모는 덜 사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덜 사고 아이와 노는 사람이다
(P.106)부모들은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한다, 놀라겠지만 이런 부모와 교사에게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비결을 하나 이야기해 드리고 싶다. 아이들이 작고 자주 다치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 않는다. 흔히 하는 스포츠가 아이들에게 맞는지 숙고해야 한다. 스포츠는 특정 근육만을ㄹㄹ 반복해서 쓰게 만든다. 이 시기 아이들은 골고루 몸을 써야 한다. 아이들한테 권할 것은 놀이이지 본격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집단적인 스포츠는 어린 나이에 특히 경계해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의 재미가 아니라 경쟁에 사로잡혀 승패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심심찮다. 아이들이 놀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의력이 생긴다는 선전도 경계해야 한다.
느낀점: 7살9살 두 아이를 키우며 진짜 놀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조금은 진짜 놀이가 무엇인지 느끼고 있는듯한 요즘이다.아이들과 동네 공원을 가보면 춥다고 어린아이들은 나와 우리 아이들 뿐이다. 그나마 우리 동네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는 한다. 그 아이들이 욕을하며 놀 지언정 왁자지껄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 옆집 5학년아이의 무표정, 생기 없는 얼굴로 오롯이 외출은 학원 다니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비교가 되었다. 엄마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아이.. 5학년 아이가 벌써 하고 싶은게 없다고 한다..안타까웠다.생기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놀터, 놀 동무, 놀 틈,이 없어서 생기없는 아이들이 많아지는걸 보고 느낀다. 빈둥거리는걸 못견디는 어른들.... 심심해 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더 못견디는것 같다. 맘껏 놀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 태권도 학원을 보낸다. 친구들과 논다고 생각을한다 ... 나는 체육활동이 놀이가 아니고 주어진 틀에서 움직이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태권도 에서라도 친구들과 노니 티비보여주는 시간이 줄어들어 좋다는 부모의 불편한 마음을 학원으로 대신 하는 합리화를 시킨다. 참 답답했다. 덜 사주어야 아이들의 놀이가 시작된다는 말을 다시 마음속에 새기며, 나의 소유욕에서 사주고 싶어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생각하며 소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누가 하자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놀이라 한다.”
이것이 내 놀이 철학의 핵심이다. (p23)
왜 우리는 놀지 않거나 놀지 못하는가? 나아가 아이들은 놀게 내버려 둘 수 없는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고 우울이고 두려움이다.(p23)
소리 질러야 아이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어야 아이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야 그게 아이다. 더 나아가 구르고, 뒹굴고, 물어뜯고, 때로 비명도 지르며 한 시절을 보내야 사람으로 클수 있다.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땅바닥을 기고 구르기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몸짓이다. 처음에는 짐승에 가깝다. 짐승이 울부짖고 뛰고 물어뜯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짐승이 사람 되려면 놀아야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못하게 한다!!
얌전히 손을 앞으로 모으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 움직일 수 없어, 놀 수없어 고통 받는 아이들이 늘어만 간다. 답답한 심정을 애써 꾹꾹 눌러 보지만,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응어리만 차곡차곡 쌓인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품고 사느 것과 같다.
이렇듯 어려서 마음껏 움직이며 놀지 못한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기란 쉽지 않다.(p31)
아이들의 이런저런 말과 몸짓에는 그렇게 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꼭 있다.(p39)
닫힌 상황에서 어떤 놀이가 가능할까. 왕따 놀이와 자해 놀이를 아이들이 발명한 까닭이다. 괴롭힘을 밖으로 향하면 왕따 놀이고, 안으로 향하면 자해 놀이가 된다.(p40)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라는, 놀이에 꼭 있어야 할 세 뿌리가 무참히 뿌리 뽑힌 아이들이 놀이 대신 하는 것이 '왕따와 자해' 놀이이고 소비와 쇼핑' 놀이다. (p41)
왕따는 바로 존중받지 못하고 관심 받지 못한 아이들이 벌이는 존재의 드러냄이다.(p43)
장난감이 적어야 세상과 만난다
놀이과 게임이 다른 것처럼, 놀잇감과 장난감 또한 다르다. 놀잇감은 자연과 살림살이 주변에서 손수 구한 것들로 만들고 이렇게 만든 놀잇감은 단순하지만, 놀이의 상상을 펼치기에 좋다. 놀잇감을 스스로 만들어 놀아야 참다운 놀이다.(p90)
정작 돈을 주고 사준 알맹이에는 관심이 없고 변신 가능한 상자에만 관심이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다.(p90)
이런 상업적 장난감의 가장 큰 해악은 '상상놀이'의 훼손과 축소에 있다.(p90)
안 사줘야, 심심해야, 아이들이 놀려고 궁리를 한다는 것을...괜한 데 속아 돈 쓰지 말자.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거나 본디 놀잇감이 아니지만 놀잇감으로 바꾸어 놀 줄 안다면 충분하다. 부모라면 장난감과 놀잇감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겠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너무 많은 장난감을 사주지 마시라. 집 안에 널린 온갖 것들을 놀잇감으로 삼도록 하시라. 가장 좋은 놀잇감은 동무이고 부모. 형제이고 교사이고 자연이고 엄마가 음식 만들 때 쓰는 주방 조리기구임을 아시라. 집 안에 장난감이 너무 많으면 아이는 '바깥' 세상을 온전히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p91)
놀이는 심심해야 시작된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좀 놔두자. 좀 빈둥거리게 놔두자. 걸핏하면 이것하고 놀자, 저것하고 놀자, 저기가서 놀아라, 캠프 가서 놀아라, 프로그램 좋은 거 있더라, 그러지 말고 심심하도록 빈둥거리도록 좀 아이들을 놔두자. 그러면 아이들이 “되게 심심하네. 뭐하고 놀지. 뭐라도 해야겠네.” 이런 마음이 솟아난다. 이게 아이들 스스로 놀이가 시작되는 때다.(p95)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놀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던 생기와 기운은 이제 따로 시간과 공간과 지도자를 마련해 키워야하는 현실이다. 부모들의 위험제거주의와 안전만능주의는 소심하고 결기 없는 아이들을 만들고, 놀이 부족이 비만과 스크린과 게임과 서셜미디어에 가까워지게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p106)
아이들이 놀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의력이 생긴다는 선전도 경계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좋아진다는 것을 부모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결국, 공부 잘하게 된다는 것인데 놀이와 몸을 쓰는 것이 이러한 것들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하는 순간 놀이와 운동은 기획이 되고 아이들을 억압한다.(p106~p107)
교육이라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아이들이 준비가 어느만큼 되었는지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조기나 적기나 교육보다 아이들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먼저 차분히 살피는 솔직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교육은 '놀이' 다음에 와야 한다. (p110-페이지 인쇄않됨)
미리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언젠가 배우게 될 것을 당겨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에 배울 때 이 아이의 태도가 진지할 수 있을까. 학교에 가보라. 낯선 것을 알아가는 설레는 첫 만남은 사라지고 웃자란 아이들을 만들어 내는 일이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생기고 있다.(p111-페이지 인쇄않됨)
아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글과 영어와 숫자에 관심을 보이는 때가 반드시 온다. 부모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엇을 하며 기다릴 것인가. 아이들과 놀면서 기다리는 거다.
'놀면서 기다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아이에게 자유와 놀이를 허용하고 허용하고 허용할 때다. 너그럽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내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부족함을 느낀다면 유머러스 정도를 추가하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데 이 세 가지면 정말 부족함이 없다.(p113)
느낀점:
7살 9살 아직 어린 아들 둘 키우는 엄마입니다.
놀이에 대한 핵심을 이해하기전 저는 엄마라는 명분으로 많은것을 가르치겠다고 아이를 못살게 굴었더라구요.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싫다고 아니라고 재미없다는 신호를 보내더라구요. 그때부터 “ 아닌가? 그럼 뭔데?” 이렇게 아이들이 주는 신호로 부터 저는 비로소 어떻게 놀고 싶은건가 하며 답을 찾아보려고 놀이수업을 듣기 시작했답니다. 절실했지요.
이번장을 읽으며 공감갔던 부분을 적어본것 처럼 내가 하고싶은게 놀이다.
뭔가 체험하며 해보라고 해볼가 할때보다 제지없이 스스로 놀때 아이는 집중해서 노는 시간도 길고 여러 놀이로 연장되여 까르륵 웃으며 즐기고 있는걸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짐승에 가깝다는 표현이 이시기에 완전 위로되는 문구였습니다. 코로나로 보낸 지난 1년 아이들이 “난 아직 짐승입니다”고 보여주듯이 집안은 천장에 붙어있지 못한것 말고는 거의 다 오르고 내리며 누워서 머리 중심으로 빙빙 돌아치기도 하고 온갖 괴성을 다 들어보고 가끔 저는 공포스럽기도 했지요. 무릎으로 기여다니는 초등생은 무릎에 구멍난 바지 두벌 버리며 세삼 느꼈답니다. 짐승이 옷을 아껴 잘 입어야 하는걸 어찌 알겠습니까? 참자 참자하던 그 순간이 흐뭇하게 지켜보며 허탈하게 같이 웃어주기도 했으니 그 허용의 의미를 알게도 되였습니다. 맘은 기뻤습니다. 잘 크고있고 정상이라니 위로도 되였습니다.
장난감과 놀잇감에 대한 구분도 이번에 알게 되였네요.
티비를 켜주지 않았더니 거품기와 국자가 화장실과 장난감통에 들어가더군요. 요리할때 보이지않은 조리도구는 애들 장난감 통에서 찾아 물에 휘리릭 싰고 사용합니다. 당황스럽다가 이젠 좀 습관도 되였답니다. 상상해봅니다. 내가 아직 맘의 준비가 되지않는 순간에 애들이 요리해서 먹으라고 앞에 내줄것 같습니다.
놀지 못해 아이들이 세상에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가 된걸 체감하고 현실에서 이젠 지체해선 않될 개선문제이기도 합니다.
왕따, 자해, 쇼핑놀이, 장난감, 스크린 노출, 게임, 그리고 소아비만등 건강문제까지...
놀고 싶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없이 그때 그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는 인력 재정 낭비일뿐 아이들이 놀터 놀틈 놀친구를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수있는데 이걸 더 많은 어른들이 알고 동참해야할 사회 문제구나 세삼 느끼기도 했답니다.
조기교육에 멈추기를 했지만 아직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건 사실이고 부모로서 상업적인 상술에서 잘 구분하고 잘 지켜줘야할 몫이니 저부터 기다려주기 교육을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끝으로 아이들이 놀고 싶어하는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존중하고 그건 아이들의 목숨을 존중하는 일이며 현실속에서 더 많은 실천으로 놀이에 대해 배우고 앎으로서 내 삶도 더불어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며 더 자신있고 소신있는 양육자로 지혜롭게 아이를 함께 키우자고 전해봅니다.
질문:
어린 자녀를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읽다보니 같은 연령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공감이 더 많을것 같고 또한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성향따라 다른 상황이 있을것도 같은데 다른 느낌을 받은적은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청소년이나 좀 큰 자녀를 둔 부모님은 놀이라는 개념에서 다시 돌이켜 해석해 볼때 자녀들의 행동이 새롭게 이해가 되는점이 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홈과 하우스가 선녀씨 품에서 아늑한 놀이터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책도 너무 정성껏 읽으시고 정리도 잘 하시고 느낀점까지 풍성히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호
4장. 놀이는 아이 안에 있다.
함께 하고 싶은 문장:
(p229)가끔 몸싸움을 벌이면 어른들은 깜짝 놀라 뜯어 말리기 바쁘다. 아이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를 하면서 커야 하는데 일상 속에서 자주 저지당하고 억압받는다.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몸으로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처음부터 막아 관계 단절이 생기기도 한다.
(p229~p230)거친 몸싸움이야말로 아이들한테 꼭 필요하고 여러 어려운 상황이지만 허용해야 할 중요한 놀이다. 기다리면서 가까이 지켜보면 아이들의 거친 몸싸움 놀이라는 것이 어떤 선을 넘고 있지 않음이 보일 것이다.
느낀점:
두 형제의 놀이에는 쫓고 쫓기며 적이 되였다가 또 같은 편이 되여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아이의 놀이에는 엄마라는 중재가 있는 공간에선 그래도 자유롭운 편이고 놀이 시간이 그래도 길게 이어지는 편이다. 문제가 생겨기거나 씩씩거리며 전쟁이 날듯 싶다가도 이내 웃으며 상황 종료도 되고 가끔 대장이니 따르라는 지시도 잘 따르기도 혹은 싫다는 상대의 의견도 타협도 하다가 이내 그래! 하며 받아들어 놀이가 이어져 간다. 그것도 부모의 중재나 개입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다른 친구나 어른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 놀이는 아니 쫓고 쫓기거나 몸싸움 놀이는 대부분 교양있는 놀이로 바뀌게 된다. 난감할때도 있고 관계가 편한 부모사이라면 서로 “ 괜찮아요~ 놀게 둬요~” 이렇게 기분좋게 부모의 타협부터 이어지고 아이들의 몸싸움 놀이가 허용되는게 되부분이다. 대부분 또래 부모님도 이런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놀이 태도가 아이들의 관계를 이래저래 조종하고 관여하고 있다니 허용이란 한참 먼것 같다.
몇일전 작은 숲놀이터로 친구들이 왔고 인사도 놀이도 다양하며 모두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 진행된 굉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중 청솔모의 죽음이 정성스러운 아이들의 안식처 만들기로 이어지며 그순간 모두가 하나가 되였다. 보여주려고 다시 파해치려는 친구와 그걸 지키려는 아이가 순간 격하게 몸싸움이 이어지고 겨루다 쫓고 쫓기며 울고 웃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엄마들의 지켜봄은 당황스럽고 기다림이 참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마무리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중요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청솔모 무덤을 지키려고 동참했을뿐이였고 웃는건 도망가는 친구와 울며 쫓고 있는 두 친구의 놀이가 재밌어서 웃었다고 한다.
엄마들의 성장이 더 큰 하루고 배움의 하루였던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돌보고 관리하는 능력이 있다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잘 해결하고 놀이는 이어갈것이니 어른들이여 나대지 말자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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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그렇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의 어려움과 고민에 사로잡힐 틈이 없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마당과 골목에 쏟아져 나오는 동무들과 누나 오빠 언니 형들과 어울려 놀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해가 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 와 밥 먹고 저녁에 또 나가 놀다가 돌아와 코 골며 자기 바빴다.
(p242) “아이들이 놀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바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한껏 제공하고 그것을 아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리라. 놀이가 치유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53)아이를 풀어 줘야 우리도 풀려난다.
우리가 해방돼야 아이도 해방된다.
(p254)
1. 아이는 한가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아이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3. 아이는 함께 놀 수 있는 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4. 놀 틈, 놀 터, 놀 동무가 있어도 허용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5. 하루 두세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습니다.
느낀점:
읽다보니 내가 어렸을때 뛰여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내 친구와 우리 동네 구석구석 보이는듯 하며 행복하네요. 온도와 바람과 냄새가 기억날듯 따뜻한 햇살과 햇살피해 동네 큰 버드나무 아래 모인 어르신들까지 영화에서 나올것 같은 그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로 여행간듯 합니다. 오랜 즐거움의 추억이 아직 기억나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 童年으로 기억될가 아이 키우는 저로도 감히 상상이 않가고 뭔가 불안과 안쓰러움이 든다. 골목도 친구도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 안전한 공간도 없으니 대체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지 마음이 급해진다. 그럼 내 기억의 놀이라도 그 기분이라도 즐길수 있게 아이들과 밖으로 강으로 산으로 많이 다니며 그곳에서 놀이 친구가 되여주고 또래 같이 할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정말 감사히 초대해서 같이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 다짐 해본다. 일생에 귀한 그 童年이 가기전에 내가 지금 해줄수 있는것 부터라도 허용하고 함께 해야겠어요.
첫째가 만 3살 둘째가 8개월때 저는 친구들 동원해 글램핑을 했었다 갑갑한 집안이란 공간에서 벗어나서 숨 좀 쉬고 싶었다. 차없어 친구부부가 분당에서 산본까지 마중와주고 저는 애들과 친정엄마 동원해 산본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합류했다. 험난한 여정이라고 과언이 아니지만 내욕심인가 싶었지만 도착해서 놀때는 참 잘 왔다 싶었다. 36개월된 첫째는 캠핑장을 여기저기 이웃집 방문도 척척 하며 통제불가인듯 했지만 손잡고 일일이 따라 다니며 구경 시켰다. 아파트에선 이집 저집 구경이란 불법일수 있지만 캠핑온 새 이웃들은 마당에서 서로 오픈되였으니..계곡에 8개월된 아기는 외할머니가 기저기를 벗기고 엉덩이도 다리도 발도 물에 담궈보게 앉아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게하며 자연을 만끽 시켰다. 밥도 잘 먹고 보채는것 없이 마당에서 놀던 첫째는 저녁 9시쯤 친구들과 같이 합숙함에도 이내 잠들고 “엄마 밖에서 놀다 바로 들어와서 자고하니 좋아~”한다. 난 그기분을 알듯 했다. 8개월 둘째도 통잠을 자는 덕분에 늦게까지 난 친구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그기억이 힘들지만 참 좋은 추억이 되여 아이가 기억되길 바란다.
어렸을때 일상의 놀이생활이 지금 아이에겐 바쁜 부모의 한번쯤 이탈로 채워진다는게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여 아이와 같이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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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1)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자유놀이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사에게 이른바 '자유'가 없는데 어떻게 교사가 아이의 '자유놀이'를 옹호할 수 있겠는가.
(p264) 비고츠키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와 아이, 아이와 부모, 아이와 교사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없다면 추상의 세계로 나가는 능력은 생기기 어렵다. 그래서 '첫 번째 놀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놀이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 가까이 장난감과 교재교구가 많을수록 실내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유아교육은 실내에서 실외로, 교사의 선택에서 아이의 자유놀이로, 장난감에서 놀잇감으로 대 전환이 절박하다. 이렇게 서서히 꾸준히 '자유놀이'라는 유아교육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만약 유아와 함께 '자유놀이'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유아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개정 누리과정은 정처 없이 떠돌 것이다.
느낀점:
'놀이 밥'을 잘 지어 밥상을 차리고 이웃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들이 몇일전 초1때 반에서 친구들과 동서남북을 접어주었다고 한다. “만들수 있는 아이는 자기뿐이였나 보다”고 말을 하기에 반에서 만들기 수업을 했었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와서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그럼 너는 언제 배웠냐고 다시 물었다.
어린이집 다닐때 함께 차량 탔던 친구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도움을 받아 배웠던걸 초등학교가서 도움 받은걸 배풀었다고 한다.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노래인듯 반복하며 중얼거리는데 기특했다. 코로나로 몇번 등원하지 않아도 초1 추억엔 어쨌던 걱정과 달리 아이는 그래도 작은 사회관계안에서 자기의 선한 관계를 연결하고 있었다는것에 위로되는듯 했다.
칭찬까지 이어졌더니 즐거운지 멋적은듯 하더니 동생에게도 하나 만들며 동생은 손이 작으니 좀 더 작게 만들어야 하기 편하다고 설명까지 더 해 준다. 눈여겨 보고 인정하는 눈길이나 칭찬만으로 아이는 자신감있게 세상을 향하는 힘찬 한걸음 한걸음 잘 내딛는다. 바쁘더라도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감정에 공감해주는게 사랑이고 그게 이 사화에서 양육자의 보호의 태도이기도 한듯 하다.
별거아닌것에 너무 오버스러울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소한것이 큰 감동을 주는것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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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9)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때 '끼어들기'나 '멈추기'보다는 '바라보기'나 '이어주기'나 '함께하기'의 길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이끌기를 멈추고, 놀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가꿔 주고, 놀이를 이어주고, 아이들이 잘 어울릴 때 빠지고, 아이들이 같이하자고 할 때 함께하는 열린 태도 그 어디쯤일 것이다. 아이와 놀려면 한없이 유연해야 한다. 아이들이 나고나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 것이다.
(p279~p280)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시라. 어려서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결코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놀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이 굳고, 놀이를 빼앗기면 아이의 몸은 무너진다. 하지마! 만지지마! 가지마! 조심해! 위험해! 올라가지마! 뛰지마! 울지마! 마! 마! 마! 이렇게 아이의 놀이와 자유가 멈추면 아이의 피도 숨도 멈춘다. 그 길로 정녕 가야 하는가.
(p293) 부모와 아이는 타인이다. 타인인 아이를 향한 강요는 부모 스스로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좋은 부모는 가장 적게 요구하는 부모이고, 진정 좋은 부모는 요구하지 않는 부모다. 부모가 물러설 때 아이는 나아간다.
(p295) 우리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퍼붓는 공격과 비난 때문에 받을 상처의 크기와 종류는 갈수록 커지고 날카로워지는데 아무도 아이들에게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일어설 힘을 기를 것인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숨이 멎고 막힌다.
(p299) 게임중독은 아이들이 잘못만으로 볼수 없다. 그것은 '놀이밥'을 먹어야 할 아이들의 기본권을 오래도록 가로챈 어른들이 할 말이 아니다.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는 아이들은 불편함과 간섭과 억지가 설령 있더라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회복이 된다. 해로운 것들로 가득 찬 환경 속에 있어도 놀이밥을 먹는 아이들은 건강하고 명랑하다. 놀면 즐겁고 즐거우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웃음과 즐거움은 많은 것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게 돕는다. 놀이는 웃음과 재미와 즐거움을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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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0) 푹 자고 마음껏 놀기!이에 아이들이 해야할 유일한 일이다.
느낀점: 네!아이를 아이답게 키우자.
(p301) 건강한 아아는 늘 바쁘다.
느낀점: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는 엄마의 부름에도 “잠간만~잠~~~깐~~만~~, 나 요고만 하고 갈게~” 너무 진지하게 어른스러운 말투로 반응함에 부름을 멈추고 기다려 줍니다. 네! 바쁜 아이를 기다려 줍시다. 사랑으로 그 사랑스러움을 기다려 줍시다.
(p303) 우리는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쥐가 나면 움직이고 좀이 쑤시면 기지개를 켜고 벌떡 일어나는 살아 있는 몸 말이다.
느낀점: 부모, 교사가 보기에 반듯한 몸이 아닌 아이가 느끼고 감각을 조절하며 관리할수 있는 몸이여야 하고 그런 몸을 아이가 스스로 만들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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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밥' 약속
놀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가지렴.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아.
집도 좋고 바깥도 좋아.
잘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어.
실패도 할 수 있고 다칠 수도 있어.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놀이 박탈의 시대, 아이에게 더 많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P321~P322)
놀이가 비생산적인 활동이고 시간을 그냥 흘러보내는 것으로 보는 시각 또한 뿌리 깊다.
어린이는 불안과 우울과 좌절에서 벗어나 자기통제력, 자기결정권, 자기회복력, 자기적응력을 높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이 삶과 생존의 긴요한 요소다. 가장 중요란 것은 놀이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을 응축하는 데 있다.
“놀이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몸에 담는 과정'
(P324)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환경의 실제적 민낯은 COVID-19로 비대면이 강제된 현제 상황과 견주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놀이터에 어린이가 없는, 나가도 함께 놀 친구를 대면하기 어렵기는 COVID-19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이는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가려지고 빼돌려지고 있었고 어린이가 서로 만나기 어려웠기는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p325) “어린이는 앞서 진정 대면하고 놀았는지. 우리는 어린이가 정말 대면하고 놀기를 바랐는지” 물어보는 것에 시작하는 것이다. 배움도 만남이고 놀이도 만남에서 시작한다.
(p328)혹독한 고립 속에서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허용적 놀이환경이 무엇인지 냉철히 살피기를 간절히 청하며, 어린이가 이 복잡하고 단절된 세상의 한 켠에서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라는 행운과 만나 우정을 쌓기를 희망한다. 어린이 가까이 계시는 놀이벗들에게도 권한다.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잃으면 공감하는 힘도 잃게 된다.
(p331) 위험이 자유로운 놀이활동을 가로막고 있을 때, 놀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갈 길을 몰라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위험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공포에 어린이의 놀이와 자유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마주할수록 어린이는 자신을 지키고 돌보는 힘을 가지게 된다. 아이안에 그 힘이 있다.
비대면만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의 가치 또한 양립해야 한다. 위험이 있지만 유익함이 크고 절실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고 그것은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일상적이고 이동할 필요가 없으며 특별한 놀이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한 놀이 장소인 '홈과 하우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어린이 가까이서 놀이환경을 고민하는 양육자와 보호자에게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홈과 하우스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인데 이 점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COVID-19와 지속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홈과 하우스가 새삼스럽게 놀이터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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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느낀점: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이 13세 글자를 다시 읽을때 눈물이 핑 돈다.
미안함, 감사함, 그리고 대견함과 이 소중함을 다시 깨우치고 발견하게 해준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란 많은 감정으로 뭉클했다.
아이때 않놀면 언제 놀지? 스스로 다시 되물어 보니 할말이 없잖아요?
않된다고만 해놓고 뭘 해야할지 눈치만 보다 크고 나면 뭐라도 하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가? 원망하고 있었을가? 하니 마음이 아픔니다.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그 가치가 뭔지를 찾아서 세상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더 웃으며 같이 숨쉬며 사는 세상이 되도록 많은 노력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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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눠보고 싶은 질문:
내 홈과 하우스는 놀이터로 바뀌였나요?
아이가 그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즐기며 몸에 담고 살아가고 있나요?
자신있게 대답해주시는 가정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4. 놀이는 아이 안에 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
(P.227)놀면서 숱하게 지고 이기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언가에 좌절했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행복을 찾아가려면 행복할 때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P.229)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몸으로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처음부터 막아 관계 단절이 생기기도 한다.
(P.240) 배운다는 것이 아직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앞세우는 가르침은 살아 움직이고 바뀌는 세계와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막일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과 또래의 동무,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P.269)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때 ‘끼어들기’나 ‘멈추기’보다는 ‘바라보기’나 ‘이어주기’나 ‘함께하기’의 길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P.279~280) 어려서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결코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놀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이 굳고, 놀이를 빼앗기면 아이의 몸은 무너진다. 하지마! 만지지마! 가지마! 조심해! 위험해! 올라가지마! 뛰지마! 울지마! 마!마!마! 이렇게 아이의 놀이와 자유가 멈추면 아이의 피도 숨도 멈춘다.
(P.293) 우리는 어려서 놀았던 힘으로 오늘을 살아 내는 거다. 놀며 만났던 무의미한 행동과 자유의 기억과 그 속에서 길렀던 몸과 마음의 힘을 조금씩 꺼내 이 어려운 오늘을 사는 거다.
(P.305)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면 아이가 마음껏 놀며 결대로 성장할 수 있게 놓아 주시라. 당신과 내가 직장의 개가 아니듯 아이 또한 당신의 애완견이 아니다. 나와 당신 또한 놀이가 키웠지 않은가.
* 느낀점
월요일 정왕동 곰솔누리숲에 워커2기 놀이공동육아팀 아이들과 모여서 놀게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놀이를 하다가 죽은 청설모 한 마리를 발견 하게 됐다. 용감한 아이들은 만지기도하고 손으로 들고 장난을 치기도하고, 힘을 모아 청설모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 청설모 무덤 하나로 힘겨루기는 시작 되었다. 지키려는 아이들과 무덤을 부시려는 아이의 몸싸움이 일어나고 ... 엄마들도 용기를 내서 기다려주기! 아이들도 엄마들도 처음 격는 상황 이였다. 실패와 좌절을 넘어서는 수많은 상황과 만나게 해주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회복의 힘을 길러준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막상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게 해야 하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참 어려웠다. 가까이 있는 동무가 나와 생각이나 표현이나 몸짓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놀면서 깨우친다. 놀다 보면 서로 다르니까 조절하는 것을 배우고, 조절하다 보면 자기 고집도 돌아보고 가진 것도 나눈다. 놀이에 끼워 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힘겨루기가 내 감정으로 흔들지 않고 기다려 주기란 참으로 힘든 것 같다. 억울해서 잡으려는 아이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아이를 보고 무덤을 지키려고 서있던 아이들은 웃기까지 하고 있다니... 아이들은 잡으러가고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이 그저 웃긴 놀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어른인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역시 아이들은 놀이로 소통하는구나!’ 많은 생각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 이였다. 즐거움을 느껴봐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며, 많은걸 허용해 준다고 내 스스로 착각 하고 있진 않았는지. 만지지마! 조심해! 울지마!를 입에 달고 있진 않았는지...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
*질문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 ‘바라보기‘ , ’이어주기‘ , ’함께하기‘ 길을 잘 찾고 계신가요?
엄마가 넉넉하면 허용이 잘 되는것 같아요..ㅋㅋ 오늘도 많은 이야기 나눴지만 있는자의 여유란 말이 왜 갑자기 ^^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3. 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놀이로 채운다
*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
(P.166)놀이기구를 놀이터에 사 넣는 데 큰돈 쓰지 말고 황토 한 차 부어 놓고 수도꼭지 하나 달아 주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변화를 줄 수 있는 놀이터이지 놀이기구가 촘촘히 들어선 놀이터가 아니다.
(P.182) 놀이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데코레이션이다. 생태놀이터 곳곳에 장식이 넘쳐 난다. ‘나무소리터’, ‘곤충과 조류호텔’, ‘물레방아’는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P.185) 놀이터 콘셉트와 기능을 선전할 것이 아니라 진정 아이가 그곳에 와서 어떤 ‘사회적 소통’을 할 수 있는지 깊이 살펴야 한다.
(P.186)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놀 수 있어야 한다.
(P.208) 놀이터는 어린이가 ‘실험하고 도전’하고 상상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장소를 베껴서 만들면 그곳에서 어떤 실험과 도전과 상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P.221)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 모두가 놀이터여야 한다는 말이다.
* 느낀점
용인 만골근린 공원에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규모가 큰 미끄럼틀이 많아 블로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무척 좋아 할 것 같은 생각에 아이들과 가보았다. 또 오자고 할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한참을 땀까지 흘리며 놀던 아이들이 주변 나뭇가지를 줍고 땅을 파고 작은 물건을 숨기고 그 많은 놀이기구들 옆에 두고 다른 놀이를 한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놀 터와 놀 친구만 있으면 되는 구나 깨닫는 순간 이였다. 놀이터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외투를 벗고 있는 건 우리 아이들 뿐 이였다.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그 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데 우리 아이들만 땀을 흘리나 생각하며 주위를 더 살펴보게 됐다. 다른 아이들이 외투를 벗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아이들이 놀 시간을 주지 않는 부모들,10분 20분 만에 다들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고 화려한 놀이터가 아닌 놀 터, 놀 친구, 놀 시간이 충분 하면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놀이가 된다는 걸 다시 느끼며 나 또한 한 뼘 성장 한다. 큰 공원보다 동네 아담한 공원을 더 좋아하는 이유를 더 잘 알 것 같다.
* 질문
“가장 좋은 놀이터와 최고의 놀이기구는 다름 아닌 넉넉한 놀이시간이다.” 아이들(또는 나)에게 넉넉한 놀이 시간을 주고 계신가요?
3장. 놀이터를 비워야 아이는 그곳을 놀이로 채운다.
함께 하고 싶은 문장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변화를 줄 수 있는 놀이터이지 놀이기구가 촘촘히 들어선 놀이터가 아니다.(p166)
어린 시기에 맨발로 흙과 모래를 밟을 수 있게 하는것이 면역과 운동능력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놀다가 더러워지고 소란스럽고 어지르고 다치는 게 놀이다.(P169)
아이들은 왜 놀이터에 오는지? 왜 놀이터에 올 수 없는지? 왜 놀이터에 왔다 서둘러 가야 하는지? 쉽고 단순하게 볼수 있어야 한다.(p179)
아이들은 흙이나 모래 가까이에서 두세 시간은 거뜬하게 파고, 옮기고, 덮고, 쌓고, 뚫고, 길을 만들고, 물을 부으며 온갖 놀이를 한다.(p187)
놀이기구는 흙산 하나로도 충분하다(189)
'놀이기구'위주의 놀이터에서 이제 '자유놀이' 위주의 놀이터가 필요한 까닭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놀이 위주의 놀이터라는 곳은 노는 시간이 허용되는 장소일 것이다.
'놀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놀이기구'이기 때문이다.(p206)
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이 즐겁고 재미있고 기쁜지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놀이이니 교육과 무엇이 다르다 할까.(p216)
계획가들은 흔히 하는 놀이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필요한지 깨닫지 못하는 듯싶다. 또 장소와 설비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장소와 설비는 유용한 부속물일 수 있지만, 오직 사람만이 아이들을 키우고 문명사회에 동화시킬 수 있다.
제인 제이콥스의 말대로 최고의 놀이와 놀이터는 친구이고 부모이고 이웃이고 거리다. 어찌 보면 아이들의 놀이실종은 친구와 부모와 이웃과 거리의 실종일 수 있다. 달리 말한다면 만약 놀이결핍과 놀이실종을 줄일 길을 찾는다면 그것은 놀이도구나 기구장난감 또는 기기가 아니라 관계와 친구와 거리라는 자명한 결론에 다다른다.(p218~p219)
재미없는 놀이는 일이고
재미있는 일은 놀이입니다!(p220)
놀이터는 필요 없다.
아이에게는 이 세상 모두가 놀이터여야 한다는 말이다.(p221)
느낀점:
동네 놀이터는 그냥 아이들이 차량을 피해 가짜 놀이를 하는 잠간 허용된 터(공간)일 뿐이다. 가끔 그 놀이기구마저 뛸 공간을 방해하는 장애물 같은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칠더라고 장애물 없이 질주하고 뒹굴수 있는 곳곳에 'NO' 'STOP' 문구가 없는 허용된 그런 놀이터였으면 더 좋았을것을...아쉽지만 내가 사는 동네 놀이터 모습은 아직 그렇다. 아이가 어릴때 난 그게 당연한 풍경이며 그런건가 했다.
어린 첫째가 어린이집 하원하고 집앞 놀이터에서 잠간 놀고 집으로 가곤 했다.
첫째는 보고싶던 엄마와 잠간 이것 저것 놀이기구를 좀 놀고 나면 놀이터 밖에 숲길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숫가락이나 빨대로 놀이를 한다. 작은 숫가락으로 흙과 모래를 모아서 빨대를 꽂거나 부러진 나무 가지를 꽂아서 놀이한다. 가끔 큰 애들이 쏘다 떨어진 비비탄알을 주어 숨기곤 하며 집에 올때는 주머니에 담아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 옆엔 어느새 또래 애들이 모여 같이 놀기 시작하고 그 아이들중 꽂아둔 빨대를 휙 뽑아 도망가기도 한다. 지켜려는 아이에게 그아이는 손을 뻗고 볼을 꼬집기까지 하며 빼앗어 도망간다. 동네 같은 원에 다니는 아이였다. 세상 귀한걸 잃은듯 울며 쫓아간다. 울음 소리를 듣고 뺏은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마중하며 달려오고 빨대를 돌려주지만 그아이가 또 울어버린다. 나는 지켜보며 내아이가 그 빨대를 받아서 울음을 그치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는 이렇게 자기 아이를 달랜다.” 더러운데 그게 뭐라고 빼앗아 도망가!” 더러운걸 만졌다고 짜증스런 그 표정을 난 분명 봤다. 그 아이와 엄마는 내 아이에게 아무말도 하지않고 돌아서고 돌아오는 내아이는 저를 올려다 보고 저는 그냥 웃어주고 이내 놀이는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 감정은 슬펐다. 난 아이가 그냥 더러운게 아닌 놀이감을 지켜낸게 대단했고 다음에 볼을 꼬집으면 아프지않다고 참지말고 손을 뿌리 치라고 가르쳤다. 난 그때 그 기분이 잘 잊혀지지 않을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 내아이는 놀고 있었을 뿐인데 한아이는 놀지 못했구나 부모가 놀지 못하게 했다는걸 알았으니 ...그리고 놀이는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다는걸 알고 그때 그 울음도 놀이일 뿐이였다니 이젠 맘이 불편하지 않다.
아이는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 다음은 속도를 내면서 뛰여보려 하고 다음은 내리막 오르막 경험을 즐긴다. 다음은 다리를 높이 들고 계단을 오르거나 폴짝 폴짝 뛰는 경험도 하며 그렇게 하나하나 더 자극적인 모험을 즐긴다.
놀이터 미끄럼을 계단을 밟고 올라가 미끄러 내려오는 사용방법을 가르침도 잠시 발로 디디고 손으로 당기며 아이는 미끄럼을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좀 더 크면 올라가서 내려올때는 눕거나 슈퍼맨하며 엎드려 내려온다. 놀이기구 위로 올라가고 그네도 서서 타고 ...그때부터 제지를 받는다. 그때부터 놀이터는 아이에게 그냥 놀 친구를 만나는 장소가 되여가다가 친구가 없으면 몇번 뛰고 오르다 다른곳으로 가자고 한다.
두 아이의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동네를 벗어나 공원으로, 산책길로, 심지어 주말 조금 한가한 공단의 길을 아이와 함께 다니기도 한다. 새로운 자전거 도로를 경험하고 사계절 길옆에 바뀌는 모습을 경험하고 그렇게 놀이터를 확장해 갔다. 가끔 자전거 앞바구니에 고구마 수확하는 할아버지가 주는 고구마를 넣고 자전거 손잡이를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놀이하다보면 의외의 즐거움에 다음 출발이 기대된다. 오늘은 애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올지...
몇일전 올겨울 들어 두번째로 많은 눈이 내렸다. 급히 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눈놀이를 나갔다. 저녁시간이 되여가는 시간이라 대부분 좀 큰 아이들만 있었고 어른들은 차에 눈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지상에 주차라 놀이터로 가려고 했는데 현관을 나서는 즉시 아이들은 눈을 만지며 놀았다. 그야말로 집을 나서는 준비부터 이미 놀이는 시작되였고 현관을 나서 눈이 보이는 그곳이 놀이터였던 것이다. 1층 어린이집 선생님이 눈을 쓸어내고 경비 아저씨들도 눈을 치우느라 바쁘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아두고 쓸어두는 눈위에 소파에 앉듯이 앉아버린다. 심지어 둘째는 앉더니 눈으로 자신을 덮으라고 주문을 한다. 눈을 담고 모으고 밟느라 바뻤다. 놀이터가려던 계획은 잠간 접고 의자위에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냥 일단 놀기로 했다.
한참후 오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고 우린 놀이터를 가려다 이번엔 엄마가 생각이 바뀌였다. 아파트 뒤에 숲길로 가자 했다. 큰애가 잠간 의아해 하는데 숲길에 도착하자 애들이 뛰고 신발을 끌며 난리났다. 누구도 점령하지 않은 터,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그 놀이터를 우리가 찾아냈으니 말이다. 가로등이 켜지고 눈이 반짝반짝 하고 고요하기까지 하니 이 분위기 아이들은 낯설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걸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사진찍고 나무가지 흔들어 보고 누구도 밟지않는 눈위에 발자국 남기며 동영상도 찍어보고 .....그렇게 놀터를 찾고 놀아이들과 난 우리들의 놀 시간을 채워갔다.
그렇게 놀이터는 놀이기구가 딱히 필요없고 아이 자유롭게 자국을 남기며 뛰거나 뒹굴수 있는 공간이 최고의 놀이터이였던 것이다. 엄마 사랑해~~아이들이 외치고 그 외침엔 난 “여기 정말 재밌다”라고 들렸다.
그렇게 예정했던 놀이터로 가는 길에 우리들은 새로운 놀이터를 경험하고 놀고 들어가는 아이들을 뒤로한채 우리들의 놀이는 한참 더 이어갔다. 오늘은 딱히 저녁을 7시에 먹을 생각이 누구도 없었다. 엄마도 말입니다. 놀이밥을 먹고 있으니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었다.
놀고 싶어 호소하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놀터를 넓혀주고 놀 시간을 충분히 함으로 놀터, 놀시간을 더 많이 허용해주자. 아이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놀며 숨쉬며 즐겁게 살기 바라는 마음은 같을거라 생각합니다. 놀며 즐거운것 재미있는것 기쁜것을 알고 또 그것을 찾기위해 경험하고 모험하며 잘 성장 할거라 믿어봅시다. 그게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교육자로서 또 사회에서 해줘야할 책임이고 사랑이고 또한 인간에 대한 존중인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커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욱더 아이의 놀친구가 되여 함께하는 시간, 함께 할수 있는것을 충분히 즐기며 그 관계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재밌는 삶을 경험하자고 전해봅니다.
아이들에게 그게 최고의 사랑이고 최고의 놀이가 된다는걸 이젠 알았으니 말입니다.
질문:
재밌으면 놀이고 재미없으면 일이다.
1. 재밌게 놀이하듯 일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건 뭐라고 생각합니까?
2. 나의 일로 아이의 놀이 허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적 있나요?
2021.01. 15. (금) 10:00 ~ 12:00(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2장 읽고 오기)
서기: 천선희
참여: 김선녀, 허진, 천선희, 김선형(다음주 부터 대화 참여 가능)
*최고의 놀이란?(김선녀 질문)
*얼마나 잘 쉬고, 잘 놀고 있나요?(천선희 질문)
김선녀: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이자 최고의 놀이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 엄마로써 주부로써 부담감을 내려놓고, 그냥 편하게 마음가짐을 바꾸고 심심해 할까봐 걱정하지 않고 일상의 가정에서 삶 자체가 가정의 평화로움, 티비 보고 싶어 하면 난 책을 읽을 거라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둘이서 논다. 내가 참아내면 또 한 단계 성장 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허 진 :
환경에 따라 아이들이 좋아하면 그게 최고의 놀이가 아닌가
본인의 최고 놀이는 워커2기들과 공동육아의 놀이 단톡방 자체가 요즘의 큰 즐거움이다
천선희:
코로나로 인해 같이 있는 일상이 그냥 놀이가 된 듯 하다. 함께 사는 집이니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같이 하는 일상들이 늘어났다 분리수거도 모두가 같이 하는 일중에 하나다 (함께하니 더 빨리 끝나고 좋다라는 칭찬과 함께 하니 서로 즐거운 것 같다) 말로써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읽기도 내 시간 갖는 것도 미안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편이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두 질문이 같은 맥락의 내용의 답이 나온 것 같다.
기타의견:
허용을 주제로 서로의 생각 나누기!!
그루밍양육에 대한 생각 나누기!!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이기에 역시 마무리 시간 부족^^)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경험이 아이들에겐 놀이이자 최고의 경험이 아닌가 싶네요...어찌보면 내가할일 너희가 할일을 따로 정하지않고 느끼는 행복..
책읽기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2021/01/ 15 김선녀 함께 하고 싶은 문장: 아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성장한다는 것이 뭐 별것인가. 제 몸 하나 건사하고 부릴 줄 아는 것이다. 동생을 돌보고,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어른들 따라 작은 힘이라도 보태다가 장난도 치고, 그것이 다 놀이 아닌가. 아이들한테는 놀 권리와 함께 일할 권리도 있다. 아이한테 알맞은 일을 거들 수 있게 하자. 아이들은 세상을 소소한 일과 놀이를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데 어른들은 지식만 억지로 먹이려 하니 아이들이 힘들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때, 그 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정말 최고의 놀이다. (P122) 아이들 놀이는 진지하고 지극하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언제나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들만의 작은 우주를 날마다 새롭게 빚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려면 아이들한테 아주 긴 놀이의 시간이 허락되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하면 역할놀이와 상상놀이를 오가며 놀이의 꽃을 피운다.(P127~P128) 진짜 놀이란 한 번 또는 하루에 끝날 수 없다. 그리고 쉽게 치울 수 잇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한가롭고 긴 시간이 필요한다. 놀 틈을 꽉 막아 놓고 아이들이 노니 안 노니 하는 이야기가 내게는 그래서 거짓으로 들린다. 아이들이 이제 조금 놀려고 하면, 상상을 펼치려면, 막 놀이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면, 그만 정리하라는 말이 들린다. 그것은 아이들 놀이를 피괴하는 일이다. 놀이가 상상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결국 놀이의 꽃인 '상상놀이'는 서두름과 재촉 속에서는 피지 않는다.(P128) 놀이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오롯한 재미와 경지를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한 놀이에 오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P136) 가까운 사람이 불편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잘 노는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천천히 알게 하자.(P144) 이처럼 노래보다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고상하게 말하면 춤이고 달리 말하면 몸짓이고 몸부림이다. 아이들한테는 그것이 바로 놀이다. 이것이 이야기와 노래와 놀이라는 세 가지 장르의 관계다. (P150) 아이들의 놀 권리를 아이들의 가장 앞선 인권으로 명기할수 있는 것이 진정한 진보교육의 출발이다(P154) 혁신과 대안이란 배움과 놀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P154) 누가 내게 왜 놀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웃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 왜 놀이운동을 하냐고 물으면 웃을고 한다고 말한다. 웃음이 없는 자유놀이는 가짜 놀이다.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학습을 놀이로 포장해 아이들을 속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다가 웃기도 하고 또 울기도 한다. 그렇다. 웃음과 울음이 있어야 진짜 놀이다.(P156~P157) 놀이 선택의 결정과 놀이환경 선택을 성인이 다 해놓고 '자유놀이'가 우기는 희극은 인제 그만 봐도 될 때가 되었다. 지금 유아교육 현장에 프로그램화된 유사 자유놀이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촉각을 곤두세워 주의하고 경계하고 뿌리치자.(P157)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교묘하고 치밀하게 조종하려는 마음'을 여러 선량한 양육자로부터 자주 목격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말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는지 않는지 말이다.(P159) 양육자가 그루밍 양육과 전연하는 곳에 자유의 바람은 아이에게 불고 그곳에 놀이의 꽃은 핀다. 모든 것은 다 사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P160) 느낀점: 보호자 양육자라는 이름으로 나는 자녀에게 내 몸 하나 건사하고 부릴줄 아는 훌륭한 어른인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보게 됩니다.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엄마는 서툴어라고 말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가? 어떻게 하고싶어? 하고 더 많이 물어보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함께 성장해야겠다고 생각 해봅니다. 세상에서 으뜸으로 훌륭한 놀이이자 최고의 놀이는 보호자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때, 그옆에서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아이가 자유롭게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즐기고 살 능력을 키우는 힘이 있으니 믿어 주렵니다. 모든것을 더 해주려고 더 더 더...그냥 편하게 내려놓고 서두르지말고 재촉하지 말고 그냥 그 놀이 세상에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 하며 이어가도록 시간을 주고 공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아이에게 불편한 사람아닌 편한 한 사람이 되려고 말입니다. 그 공간에 내 삶도 있고 추억도 함께 하며 웃고 울고 즐기는 삶이 될것이며 아이는 그렇게 잘 크고 자기 몸 하나 잘 건사하는 어른이 될것이라 믿어봅니다. 아이가 어느날은 신발을 닦고 어느날은 설겆이를 하며 어느날은 방도 닦습니다. 시킨건 아닌데 심심했나 봅니다. 그냥 엄마 아빠 하는 일, 하는 놀이를 따라 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잘때는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 하고 토닥토닥 인사하고 잡니다. 그 수고의 의미을 알고있다고 말하듯이 ... 오늘은 책을 읽을거라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알겠다며 잠간 놀이하더니 책을 읽는데 기웃거리며 기다리더니 않되겠는지 각자 방해는 하지않을테니 나도 책을 같이 보고 싶을 뿐이라는 눈치를 주며 한글 모르는 둘째가 그림책을 번지고 첫째가 초등학생백과사전을 읽으며 심지어 누워보는 저의 불량독서 행동을 따라하더군요. 요즘 그렇게 놀아 주려고 뭘 해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저를 찾다보니 아이들이 기다려도 주고 티비를 켜주지 않는 날이 많아지니 두 형제의 상황극이 꽤 재미있게 전개되며 그 놀이 이야기에 저 또한 일을 하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간에 잠간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편해문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내가 현실을 경험함에 무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과 행복감이 일상의 활력소로 바쁜 일들도 좀 척척 잘 해결하는듯 하는 느낌도 드네요. 놀라운 변화이며 의도하려는것도 없는데 큰 선물인듯 합니다. 질문: 최고의 놀이를 경험한적이 있나요?
저 또한 편해문선생님 어릴적놀이를 읽으면서 나의 어릴적엔 어떻게 놀았는지 다시한번 되짚는시간이 되었어요.가끔씩 아이들이 엄만 뭐하고 놀았어?그건 어떻게해?물어볼때면 참 안스럽기도한거같아요..예전처럼 아이들이 놀지못하는아이..방법을 모르는아이등 저 또한 놀이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시간이 되었어요.
질문에 아이앞에서 얼마나 쉬는지에 대해선 그래도 어느정도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었던 순간부터 점점 나의 시간도 늘어나는거같아요..그러면서 나만의 놀이도 함께할수있는거같구요..
*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
(P.136)놀이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오롯한 재미와 경지를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한 놀이에 오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
(P.143~144) 지금은 아이들에게 놀이전문가 성인이 어떤 놀이를 들이밀기보다는 좀 쉬도록 환경을 가꿔 주고, 이렇게 쉰 아이가 서서히 자유놀이에 기지개 켜기를 기다려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하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원하되 직접적인 진행과 간섭을 최소화하자.
둘.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지는 철저하게 아이들에게 맡기자.
셋. 놀이시간을 여유롭고 유연하게 계획해서 아이들이 쫓기지 않고 안정 속에서 놀이를 풍성하게 가꿀 수 있게 하자.
넷. 학교나 기관이나 단체에서는 놀이활동가의 놀이활동을 평가하거나 감시하지 말고 믿고 맡기자.
다섯. 가까운 사람이 불편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아이들은 잘 노는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하자.
여섯. 우리는 아이가 놀이를 확장하도록 도와야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일곱. 우리는 놀이의 조연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P.157)웃음과 울음이 없다면 그것을 자유놀이라 부르지 말자. 울음과 울음이 없다는 것은 친구와 놀고 있지 않으며 친구와 만남이 없다는 말이다.
(p.159)보호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말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는지 않은지 말이다.
*느낀점
편해문 선생님의 어릴적 놀이가 정말 신나고, 어깨를 들썩이며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어릴적 놀이가 참 많이 떠올랐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는 나또한 무섭지 않은척 하며 도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9살 딸아이가 엄마는 어릴적에 무얼하고 놀았는지 질문을 자주 한다. 나의 어린시절 놀았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때론 같이 해보기도하고 아이와 공유하는 요즘이다. 나름 아이들이 하고 싶은걸 해주고 많은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호라는 이름으로 말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지나치게 지배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갖어야겠다.
*질문
아이 앞에서 얼마나 쉬고, 놀고 있나요?
저의 놀이는 만들기 입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프랑스 자수 시작을 안했다가 작년 코로나로 인해 시간이 주어지면서 자수 놓는것을 도전하기 시작해서 놓다보니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완성 되어가는 제 만족에 계속 놓습니다.
걷는것도 좋아합니다. 아이들하고 핑계대고 나가는게 걷고 오면 기분이
저는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보이지않는힘..요즘 정말 많이 느끼는 육체적인 힘든점이 많았어요..그래서 새벽운동을 시작하였고 걷는 그 자체도 저에겐 하나의 새로운 놀이로 다시 맛보고 있답니다.조그마한 변화가 알게모르게 저에게 큰힘이되고있답니다.
1. 놀이는 아이의 목숨이다
(P.23) "누가 하자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놀이라 한다." 일의 반대가 놀이고 놀이의 반대가 일이라는 것은 꽤 오래된 오해고 이런 오해 때문에 우리는 놀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고 우울이고 두려움이다.
(P.25)아이들과 놀이가 동무라서 그들 사이에는 오랜 우정이 있다. 우정은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으로 덮인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오랜 동무인 아이들과 놀이 사이에 우정이 꽃피어야 한다.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을 떨치는 방법은 '지금 놀기'다.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그냥 '놀기'다.
(P.26)아이는 하고 싶은 걸 하며 놀 때 가장 잘 배운다. 그래서 배움은 놀다 보면 생기는 기타 등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P.28)놀이는 머리 좋아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을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만나는 일이다.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느낌이 어떤지 알아야 즐겁고 행복한 무언가를 더듬거리며 찾아갈 수 있다. 아이들과 비석 사이에 어떤 인연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비석을 자기 몸처럼 여길 까닭이 없다. 동무가 던지는 비석에 내 비석이 맞아 쓰러진들 감흥도 없다. 이런 것이 억지 놀이다. 다시 말해 민속놀이, 전래놀이를 한다고 해서 그게 놀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비석치기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비석은 ‘나’이기 때문에 고이 쥐고 가서 잘 간직한다. 놀이는 끝났어도 놀잇감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 이게 놀이다.
(P.29)놀이 속에 있는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다. 놀이라는 것은 대부분 혼자 할 수 없고 함께한다. 잘 노는 사람은 아이들을 쥐락펴락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따뜻한 공간과 시간을 가꿔 주는 사람이다. 놀아야 사람이고 놀아야 아이다.
(P.30) 나와 아이들에게 더 솔직해지자.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불안과 우울을 떨쳐내자. 그렇게 놀다가 어느새 불안과 우울에서 멀어진 당신과 아이를 만나고 싶다. 아이들은 오로지 놀 생각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든 놀고 있다. 한결같이 놀 궁리만 하는 아이가 아직 가까이 있거들랑 이렇게 말해 주자. “괜찮아!”
(P.33) 마구 뛰거나 힘없는 아이들 사이에 있어야 할 마음이 건강하고 명랑한 아이를 만나기 점점 어렵다. 아이들은 얼굴에 명랑이라는 두 글자가 딱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P.34)주의력은 놀이에 흠뻑 빠져 놀아야 생긴다. 아이가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마음껏 놀지 못한 하나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놀이라고 주장 해 왔다.
(P.38)부모가 누구이든, 양육자가 무엇을 하든, 사는 곳이 어디든,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놀이와 놀이공간과 놀이시간에 닿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아이들은 놀이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
(P.40)놀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외로움이다.
(P.49)험한 길을 헤쳐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생기와, 놀면서 만나는 동무와의 우정과 가까운 성인의 말없는 지지가 있어야 아이들은 살 수 있다. 왕따와 학교폭력과 자해와 자살 문제를 놀이와 우정을 제쳐 두고 푸는 길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부디 유아 시절부터 아이들을 빼돌리지 말고 충분히 놀 수 있도록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를 찾아 주자.
(P.93) 놀이가 가지는 힘은 단순히 재미와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된 뒤 살아가는 힘으로 자리 잡는다. 어려서 했던 놀이를 돌이켜 보면 땅에 그어진 금을 밟아 죽고 사는 경우를 참 여러 번 겪는다. 그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음 판에 다시 살아나 실패와 죽음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경험을 하는데,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어른이 됐을 때 삶의 어려움을 이겨 내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반드시 쓰인다.
(P.95)아이들이 놀이를 언제 시작하겠는가. 어른들이 놀자고 할 때? 아니다. 장난감을 사줬을 때? 아니다. 놀이는 심심해야 시작된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좀 놔두자. 좀 빈둥거리게 놔두자. 걸핏하면 이것하고 놀자, 저것하고 놀자, 저기 가서 놀아라, 캠프 가서 놀아라, 프로그램 좋은 거 있더라, 그러지 말고 심심하도록 빈둥거리도록 좀 아이들을 놔두자. 그러면 아이들이 “되게 심심하네. 뭐하고 놀지. 뭐라도 해야겠네.” 이런 마음이 솟아난다. 이게 아이들 스스로 놀이가 시작되는 때다.
(P.97)아이는 엄마아빠와 놀고 싶은데
아이는 동무들끼리 놀고 싶은데
아이는 밖에 나가 놀고 싶은데
비싼 장난감을 사서 가득 안기고
온갖 책을 사주고 게임기를 사주고
어디를 자꾸 가라 하고
스크린을 켜주며 안에 있으라고 한다
사는 것이 늘어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사는 것이 늘어나면 아이들 놀이는 멈춘다
사는 것이 늘어나면 아이들 놀이는 숨는다
돌멩이나 막대기보다 못한
값비싼 그 많은 장난감부터 조금씩 줄여가야 한다
부모가 사다 준 장난감이 아이 가까이 쌓일수록
아이들의 자유는 그 안에 갇히고
(P.98)아이들의 퍼덕거리던 상상의 몸짓은 잦아든다
세상은 사야 한다고 날마다 떠들지만
아이들은 맨손과 맨발이어야 아이들로 자란다
장난감이 적어야 놀이는 시작한다
뭐가 없어야 놀이는 시작한다
심심해야 놀이는 시작한다
적게 사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돈 비린내 진동하는 물신의 세상을 사는
참된 부모는 덜 사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덜 사고 아이와 노는 사람이다
(P.106)부모들은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한다, 놀라겠지만 이런 부모와 교사에게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비결을 하나 이야기해 드리고 싶다. 아이들이 작고 자주 다치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 않는다. 흔히 하는 스포츠가 아이들에게 맞는지 숙고해야 한다. 스포츠는 특정 근육만을ㄹㄹ 반복해서 쓰게 만든다. 이 시기 아이들은 골고루 몸을 써야 한다. 아이들한테 권할 것은 놀이이지 본격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집단적인 스포츠는 어린 나이에 특히 경계해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의 재미가 아니라 경쟁에 사로잡혀 승패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심심찮다. 아이들이 놀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의력이 생긴다는 선전도 경계해야 한다.
느낀점: 7살9살 두 아이를 키우며 진짜 놀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조금은 진짜 놀이가 무엇인지 느끼고 있는듯한 요즘이다.아이들과 동네 공원을 가보면 춥다고 어린아이들은 나와 우리 아이들 뿐이다. 그나마 우리 동네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는 한다. 그 아이들이 욕을하며 놀 지언정 왁자지껄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 옆집 5학년아이의 무표정, 생기 없는 얼굴로 오롯이 외출은 학원 다니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비교가 되었다. 엄마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아이.. 5학년 아이가 벌써 하고 싶은게 없다고 한다..안타까웠다.생기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놀터, 놀 동무, 놀 틈,이 없어서 생기없는 아이들이 많아지는걸 보고 느낀다. 빈둥거리는걸 못견디는 어른들.... 심심해 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더 못견디는것 같다. 맘껏 놀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 태권도 학원을 보낸다. 친구들과 논다고 생각을한다 ... 나는 체육활동이 놀이가 아니고 주어진 틀에서 움직이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태권도 에서라도 친구들과 노니 티비보여주는 시간이 줄어들어 좋다는 부모의 불편한 마음을 학원으로 대신 하는 합리화를 시킨다. 참 답답했다. 덜 사주어야 아이들의 놀이가 시작된다는 말을 다시 마음속에 새기며, 나의 소유욕에서 사주고 싶어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생각하며 소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질문: 어른이 됐을 때 삶의 어려움을 이겨 내는 보이지 않는 힘, 나의 놀이는 어땠나요?
저도 같은 연령대로써 공감이가네요 개인 성향이 있기에 놀이하는 방법이나 활동하는것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놀틈을 주면 놀이에 몰두 하는것 맞는듯 합니다.
함께 하고 싶은 문장
“누가 하자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놀이라 한다.”
이것이 내 놀이 철학의 핵심이다. (p23)
왜 우리는 놀지 않거나 놀지 못하는가? 나아가 아이들은 놀게 내버려 둘 수 없는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고 우울이고 두려움이다.(p23)
소리 질러야 아이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어야 아이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야 그게 아이다. 더 나아가 구르고, 뒹굴고, 물어뜯고, 때로 비명도 지르며 한 시절을 보내야 사람으로 클수 있다.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땅바닥을 기고 구르기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몸짓이다. 처음에는 짐승에 가깝다. 짐승이 울부짖고 뛰고 물어뜯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짐승이 사람 되려면 놀아야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못하게 한다!!
얌전히 손을 앞으로 모으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 움직일 수 없어, 놀 수없어 고통 받는 아이들이 늘어만 간다. 답답한 심정을 애써 꾹꾹 눌러 보지만,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응어리만 차곡차곡 쌓인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품고 사느 것과 같다.
이렇듯 어려서 마음껏 움직이며 놀지 못한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기란 쉽지 않다.(p31)
아이들의 이런저런 말과 몸짓에는 그렇게 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꼭 있다.(p39)
닫힌 상황에서 어떤 놀이가 가능할까. 왕따 놀이와 자해 놀이를 아이들이 발명한 까닭이다. 괴롭힘을 밖으로 향하면 왕따 놀이고, 안으로 향하면 자해 놀이가 된다.(p40)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라는, 놀이에 꼭 있어야 할 세 뿌리가 무참히 뿌리 뽑힌 아이들이 놀이 대신 하는 것이 '왕따와 자해' 놀이이고 소비와 쇼핑' 놀이다. (p41)
왕따는 바로 존중받지 못하고 관심 받지 못한 아이들이 벌이는 존재의 드러냄이다.(p43)
장난감이 적어야 세상과 만난다
놀이과 게임이 다른 것처럼, 놀잇감과 장난감 또한 다르다. 놀잇감은 자연과 살림살이 주변에서 손수 구한 것들로 만들고 이렇게 만든 놀잇감은 단순하지만, 놀이의 상상을 펼치기에 좋다. 놀잇감을 스스로 만들어 놀아야 참다운 놀이다.(p90)
정작 돈을 주고 사준 알맹이에는 관심이 없고 변신 가능한 상자에만 관심이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다.(p90)
이런 상업적 장난감의 가장 큰 해악은 '상상놀이'의 훼손과 축소에 있다.(p90)
안 사줘야, 심심해야, 아이들이 놀려고 궁리를 한다는 것을...괜한 데 속아 돈 쓰지 말자.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거나 본디 놀잇감이 아니지만 놀잇감으로 바꾸어 놀 줄 안다면 충분하다. 부모라면 장난감과 놀잇감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겠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너무 많은 장난감을 사주지 마시라. 집 안에 널린 온갖 것들을 놀잇감으로 삼도록 하시라. 가장 좋은 놀잇감은 동무이고 부모. 형제이고 교사이고 자연이고 엄마가 음식 만들 때 쓰는 주방 조리기구임을 아시라. 집 안에 장난감이 너무 많으면 아이는 '바깥' 세상을 온전히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p91)
놀이는 심심해야 시작된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좀 놔두자. 좀 빈둥거리게 놔두자. 걸핏하면 이것하고 놀자, 저것하고 놀자, 저기가서 놀아라, 캠프 가서 놀아라, 프로그램 좋은 거 있더라, 그러지 말고 심심하도록 빈둥거리도록 좀 아이들을 놔두자. 그러면 아이들이 “되게 심심하네. 뭐하고 놀지. 뭐라도 해야겠네.” 이런 마음이 솟아난다. 이게 아이들 스스로 놀이가 시작되는 때다.(p95)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놀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던 생기와 기운은 이제 따로 시간과 공간과 지도자를 마련해 키워야하는 현실이다. 부모들의 위험제거주의와 안전만능주의는 소심하고 결기 없는 아이들을 만들고, 놀이 부족이 비만과 스크린과 게임과 서셜미디어에 가까워지게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p106)
아이들이 놀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의력이 생긴다는 선전도 경계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좋아진다는 것을 부모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결국, 공부 잘하게 된다는 것인데 놀이와 몸을 쓰는 것이 이러한 것들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하는 순간 놀이와 운동은 기획이 되고 아이들을 억압한다.(p106~p107)
교육이라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아이들이 준비가 어느만큼 되었는지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조기나 적기나 교육보다 아이들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먼저 차분히 살피는 솔직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교육은 '놀이' 다음에 와야 한다. (p110-페이지 인쇄않됨)
미리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언젠가 배우게 될 것을 당겨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에 배울 때 이 아이의 태도가 진지할 수 있을까. 학교에 가보라. 낯선 것을 알아가는 설레는 첫 만남은 사라지고 웃자란 아이들을 만들어 내는 일이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생기고 있다.(p111-페이지 인쇄않됨)
아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글과 영어와 숫자에 관심을 보이는 때가 반드시 온다. 부모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엇을 하며 기다릴 것인가. 아이들과 놀면서 기다리는 거다.
'놀면서 기다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아이에게 자유와 놀이를 허용하고 허용하고 허용할 때다. 너그럽고 단순하게 아이와 지내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부족함을 느낀다면 유머러스 정도를 추가하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데 이 세 가지면 정말 부족함이 없다.(p113)
느낀점:
7살 9살 아직 어린 아들 둘 키우는 엄마입니다.
놀이에 대한 핵심을 이해하기전 저는 엄마라는 명분으로 많은것을 가르치겠다고 아이를 못살게 굴었더라구요.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싫다고 아니라고 재미없다는 신호를 보내더라구요. 그때부터 “ 아닌가? 그럼 뭔데?” 이렇게 아이들이 주는 신호로 부터 저는 비로소 어떻게 놀고 싶은건가 하며 답을 찾아보려고 놀이수업을 듣기 시작했답니다. 절실했지요.
이번장을 읽으며 공감갔던 부분을 적어본것 처럼 내가 하고싶은게 놀이다.
뭔가 체험하며 해보라고 해볼가 할때보다 제지없이 스스로 놀때 아이는 집중해서 노는 시간도 길고 여러 놀이로 연장되여 까르륵 웃으며 즐기고 있는걸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짐승에 가깝다는 표현이 이시기에 완전 위로되는 문구였습니다. 코로나로 보낸 지난 1년 아이들이 “난 아직 짐승입니다”고 보여주듯이 집안은 천장에 붙어있지 못한것 말고는 거의 다 오르고 내리며 누워서 머리 중심으로 빙빙 돌아치기도 하고 온갖 괴성을 다 들어보고 가끔 저는 공포스럽기도 했지요. 무릎으로 기여다니는 초등생은 무릎에 구멍난 바지 두벌 버리며 세삼 느꼈답니다. 짐승이 옷을 아껴 잘 입어야 하는걸 어찌 알겠습니까? 참자 참자하던 그 순간이 흐뭇하게 지켜보며 허탈하게 같이 웃어주기도 했으니 그 허용의 의미를 알게도 되였습니다. 맘은 기뻤습니다. 잘 크고있고 정상이라니 위로도 되였습니다.
장난감과 놀잇감에 대한 구분도 이번에 알게 되였네요.
티비를 켜주지 않았더니 거품기와 국자가 화장실과 장난감통에 들어가더군요. 요리할때 보이지않은 조리도구는 애들 장난감 통에서 찾아 물에 휘리릭 싰고 사용합니다. 당황스럽다가 이젠 좀 습관도 되였답니다. 상상해봅니다. 내가 아직 맘의 준비가 되지않는 순간에 애들이 요리해서 먹으라고 앞에 내줄것 같습니다.
놀지 못해 아이들이 세상에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가 된걸 체감하고 현실에서 이젠 지체해선 않될 개선문제이기도 합니다.
왕따, 자해, 쇼핑놀이, 장난감, 스크린 노출, 게임, 그리고 소아비만등 건강문제까지...
놀고 싶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없이 그때 그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는 인력 재정 낭비일뿐 아이들이 놀터 놀틈 놀친구를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수있는데 이걸 더 많은 어른들이 알고 동참해야할 사회 문제구나 세삼 느끼기도 했답니다.
조기교육에 멈추기를 했지만 아직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건 사실이고 부모로서 상업적인 상술에서 잘 구분하고 잘 지켜줘야할 몫이니 저부터 기다려주기 교육을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끝으로 아이들이 놀고 싶어하는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존중하고 그건 아이들의 목숨을 존중하는 일이며 현실속에서 더 많은 실천으로 놀이에 대해 배우고 앎으로서 내 삶도 더불어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며 더 자신있고 소신있는 양육자로 지혜롭게 아이를 함께 키우자고 전해봅니다.
질문:
어린 자녀를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읽다보니 같은 연령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공감이 더 많을것 같고 또한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성향따라 다른 상황이 있을것도 같은데 다른 느낌을 받은적은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청소년이나 좀 큰 자녀를 둔 부모님은 놀이라는 개념에서 다시 돌이켜 해석해 볼때 자녀들의 행동이 새롭게 이해가 되는점이 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