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29)가끔 몸싸움을 벌이면 어른들은 깜짝 놀라 뜯어 말리기 바쁘다. 아이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를 하면서 커야 하는데 일상 속에서 자주 저지당하고 억압받는다.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몸으로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처음부터 막아 관계 단절이 생기기도 한다.
(p229~p230)거친 몸싸움이야말로 아이들한테 꼭 필요하고 여러 어려운 상황이지만 허용해야 할 중요한 놀이다. 기다리면서 가까이 지켜보면 아이들의 거친 몸싸움 놀이라는 것이 어떤 선을 넘고 있지 않음이 보일 것이다.
느낀점:
두 형제의 놀이에는 쫓고 쫓기며 적이 되였다가 또 같은 편이 되여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아이의 놀이에는 엄마라는 중재가 있는 공간에선 그래도 자유롭운 편이고 놀이 시간이 그래도 길게 이어지는 편이다. 문제가 생겨기거나 씩씩거리며 전쟁이 날듯 싶다가도 이내 웃으며 상황 종료도 되고 가끔 대장이니 따르라는 지시도 잘 따르기도 혹은 싫다는 상대의 의견도 타협도 하다가 이내 그래! 하며 받아들어 놀이가 이어져 간다. 그것도 부모의 중재나 개입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다른 친구나 어른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 놀이는 아니 쫓고 쫓기거나 몸싸움 놀이는 대부분 교양있는 놀이로 바뀌게 된다. 난감할때도 있고 관계가 편한 부모사이라면 서로 “ 괜찮아요~ 놀게 둬요~” 이렇게 기분좋게 부모의 타협부터 이어지고 아이들의 몸싸움 놀이가 허용되는게 되부분이다. 대부분 또래 부모님도 이런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놀이 태도가 아이들의 관계를 이래저래 조종하고 관여하고 있다니 허용이란 한참 먼것 같다.
몇일전 작은 숲놀이터로 친구들이 왔고 인사도 놀이도 다양하며 모두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 진행된 굉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중 청솔모의 죽음이 정성스러운 아이들의 안식처 만들기로 이어지며 그순간 모두가 하나가 되였다. 보여주려고 다시 파해치려는 친구와 그걸 지키려는 아이가 순간 격하게 몸싸움이 이어지고 겨루다 쫓고 쫓기며 울고 웃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엄마들의 지켜봄은 당황스럽고 기다림이 참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마무리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중요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청솔모 무덤을 지키려고 동참했을뿐이였고 웃는건 도망가는 친구와 울며 쫓고 있는 두 친구의 놀이가 재밌어서 웃었다고 한다.
엄마들의 성장이 더 큰 하루고 배움의 하루였던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돌보고 관리하는 능력이 있다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잘 해결하고 놀이는 이어갈것이니 어른들이여 나대지 말자라고 말하고 싶다.
(p238)그렇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의 어려움과 고민에 사로잡힐 틈이 없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마당과 골목에 쏟아져 나오는 동무들과 누나 오빠 언니 형들과 어울려 놀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해가 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 와 밥 먹고 저녁에 또 나가 놀다가 돌아와 코 골며 자기 바빴다.
(p242) “아이들이 놀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바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한껏 제공하고 그것을 아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리라. 놀이가 치유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53)아이를 풀어 줘야 우리도 풀려난다.
우리가 해방돼야 아이도 해방된다.
(p254)
1. 아이는 한가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아이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3. 아이는 함께 놀 수 있는 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4. 놀 틈, 놀 터, 놀 동무가 있어도 허용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5. 하루 두세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습니다.
느낀점:
읽다보니 내가 어렸을때 뛰여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내 친구와 우리 동네 구석구석 보이는듯 하며 행복하네요. 온도와 바람과 냄새가 기억날듯 따뜻한 햇살과 햇살피해 동네 큰 버드나무 아래 모인 어르신들까지 영화에서 나올것 같은 그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로 여행간듯 합니다. 오랜 즐거움의 추억이 아직 기억나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 童年으로 기억될가 아이 키우는 저로도 감히 상상이 않가고 뭔가 불안과 안쓰러움이 든다. 골목도 친구도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 안전한 공간도 없으니 대체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지 마음이 급해진다. 그럼 내 기억의 놀이라도 그 기분이라도 즐길수 있게 아이들과 밖으로 강으로 산으로 많이 다니며 그곳에서 놀이 친구가 되여주고 또래 같이 할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정말 감사히 초대해서 같이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 다짐 해본다. 일생에 귀한 그 童年이 가기전에 내가 지금 해줄수 있는것 부터라도 허용하고 함께 해야겠어요.
첫째가 만 3살 둘째가 8개월때 저는 친구들 동원해 글램핑을 했었다 갑갑한 집안이란 공간에서 벗어나서 숨 좀 쉬고 싶었다. 차없어 친구부부가 분당에서 산본까지 마중와주고 저는 애들과 친정엄마 동원해 산본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합류했다. 험난한 여정이라고 과언이 아니지만 내욕심인가 싶었지만 도착해서 놀때는 참 잘 왔다 싶었다. 36개월된 첫째는 캠핑장을 여기저기 이웃집 방문도 척척 하며 통제불가인듯 했지만 손잡고 일일이 따라 다니며 구경 시켰다. 아파트에선 이집 저집 구경이란 불법일수 있지만 캠핑온 새 이웃들은 마당에서 서로 오픈되였으니..계곡에 8개월된 아기는 외할머니가 기저기를 벗기고 엉덩이도 다리도 발도 물에 담궈보게 앉아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게하며 자연을 만끽 시켰다. 밥도 잘 먹고 보채는것 없이 마당에서 놀던 첫째는 저녁 9시쯤 친구들과 같이 합숙함에도 이내 잠들고 “엄마 밖에서 놀다 바로 들어와서 자고하니 좋아~”한다. 난 그기분을 알듯 했다. 8개월 둘째도 통잠을 자는 덕분에 늦게까지 난 친구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그기억이 힘들지만 참 좋은 추억이 되여 아이가 기억되길 바란다.
어렸을때 일상의 놀이생활이 지금 아이에겐 바쁜 부모의 한번쯤 이탈로 채워진다는게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여 아이와 같이 하기 바랍니다.
(p261)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자유놀이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사에게 이른바 '자유'가 없는데 어떻게 교사가 아이의 '자유놀이'를 옹호할 수 있겠는가.
(p264) 비고츠키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와 아이, 아이와 부모, 아이와 교사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없다면 추상의 세계로 나가는 능력은 생기기 어렵다. 그래서 '첫 번째 놀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놀이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 가까이 장난감과 교재교구가 많을수록 실내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유아교육은 실내에서 실외로, 교사의 선택에서 아이의 자유놀이로, 장난감에서 놀잇감으로 대 전환이 절박하다. 이렇게 서서히 꾸준히 '자유놀이'라는 유아교육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만약 유아와 함께 '자유놀이'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유아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개정 누리과정은 정처 없이 떠돌 것이다.
느낀점:
'놀이 밥'을 잘 지어 밥상을 차리고 이웃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들이 몇일전 초1때 반에서 친구들과 동서남북을 접어주었다고 한다. “만들수 있는 아이는 자기뿐이였나 보다”고 말을 하기에 반에서 만들기 수업을 했었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와서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그럼 너는 언제 배웠냐고 다시 물었다.
어린이집 다닐때 함께 차량 탔던 친구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도움을 받아 배웠던걸 초등학교가서 도움 받은걸 배풀었다고 한다.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노래인듯 반복하며 중얼거리는데 기특했다. 코로나로 몇번 등원하지 않아도 초1 추억엔 어쨌던 걱정과 달리 아이는 그래도 작은 사회관계안에서 자기의 선한 관계를 연결하고 있었다는것에 위로되는듯 했다.
칭찬까지 이어졌더니 즐거운지 멋적은듯 하더니 동생에게도 하나 만들며 동생은 손이 작으니 좀 더 작게 만들어야 하기 편하다고 설명까지 더 해 준다. 눈여겨 보고 인정하는 눈길이나 칭찬만으로 아이는 자신감있게 세상을 향하는 힘찬 한걸음 한걸음 잘 내딛는다. 바쁘더라도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감정에 공감해주는게 사랑이고 그게 이 사화에서 양육자의 보호의 태도이기도 한듯 하다.
별거아닌것에 너무 오버스러울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소한것이 큰 감동을 주는것 처럼 말입니다.
(p269)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때 '끼어들기'나 '멈추기'보다는 '바라보기'나 '이어주기'나 '함께하기'의 길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이끌기를 멈추고, 놀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가꿔 주고, 놀이를 이어주고, 아이들이 잘 어울릴 때 빠지고, 아이들이 같이하자고 할 때 함께하는 열린 태도 그 어디쯤일 것이다. 아이와 놀려면 한없이 유연해야 한다. 아이들이 나고나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 것이다.
(p279~p280)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시라. 어려서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결코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놀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이 굳고, 놀이를 빼앗기면 아이의 몸은 무너진다. 하지마! 만지지마! 가지마! 조심해! 위험해! 올라가지마! 뛰지마! 울지마! 마! 마! 마! 이렇게 아이의 놀이와 자유가 멈추면 아이의 피도 숨도 멈춘다. 그 길로 정녕 가야 하는가.
(p293) 부모와 아이는 타인이다. 타인인 아이를 향한 강요는 부모 스스로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좋은 부모는 가장 적게 요구하는 부모이고, 진정 좋은 부모는 요구하지 않는 부모다. 부모가 물러설 때 아이는 나아간다.
(p295) 우리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퍼붓는 공격과 비난 때문에 받을 상처의 크기와 종류는 갈수록 커지고 날카로워지는데 아무도 아이들에게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일어설 힘을 기를 것인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숨이 멎고 막힌다.
(p299) 게임중독은 아이들이 잘못만으로 볼수 없다. 그것은 '놀이밥'을 먹어야 할 아이들의 기본권을 오래도록 가로챈 어른들이 할 말이 아니다.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는 아이들은 불편함과 간섭과 억지가 설령 있더라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회복이 된다. 해로운 것들로 가득 찬 환경 속에 있어도 놀이밥을 먹는 아이들은 건강하고 명랑하다. 놀면 즐겁고 즐거우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웃음과 즐거움은 많은 것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게 돕는다. 놀이는 웃음과 재미와 즐거움을 만나는 일이다.
어린이는 불안과 우울과 좌절에서 벗어나 자기통제력, 자기결정권, 자기회복력, 자기적응력을 높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이 삶과 생존의 긴요한 요소다. 가장 중요란 것은 놀이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을 응축하는 데 있다.
“놀이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몸에 담는 과정'
(P324)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환경의 실제적 민낯은 COVID-19로 비대면이 강제된 현제 상황과 견주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놀이터에 어린이가 없는, 나가도 함께 놀 친구를 대면하기 어렵기는 COVID-19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이는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가려지고 빼돌려지고 있었고 어린이가 서로 만나기 어려웠기는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p325) “어린이는 앞서 진정 대면하고 놀았는지. 우리는 어린이가 정말 대면하고 놀기를 바랐는지” 물어보는 것에 시작하는 것이다. 배움도 만남이고 놀이도 만남에서 시작한다.
(p328)혹독한 고립 속에서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허용적 놀이환경이 무엇인지 냉철히 살피기를 간절히 청하며, 어린이가 이 복잡하고 단절된 세상의 한 켠에서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라는 행운과 만나 우정을 쌓기를 희망한다. 어린이 가까이 계시는 놀이벗들에게도 권한다.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잃으면 공감하는 힘도 잃게 된다.
(p331) 위험이 자유로운 놀이활동을 가로막고 있을 때, 놀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갈 길을 몰라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위험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공포에 어린이의 놀이와 자유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마주할수록 어린이는 자신을 지키고 돌보는 힘을 가지게 된다. 아이안에 그 힘이 있다.
비대면만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의 가치 또한 양립해야 한다. 위험이 있지만 유익함이 크고 절실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고 그것은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일상적이고 이동할 필요가 없으며 특별한 놀이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한 놀이 장소인 '홈과 하우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어린이 가까이서 놀이환경을 고민하는 양육자와 보호자에게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홈과 하우스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인데 이 점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COVID-19와 지속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홈과 하우스가 새삼스럽게 놀이터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홈과 하우스가 선녀씨 품에서 아늑한 놀이터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책도 너무 정성껏 읽으시고 정리도 잘 하시고 느낀점까지 풍성히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호
4장. 놀이는 아이 안에 있다.
함께 하고 싶은 문장:
(p229)가끔 몸싸움을 벌이면 어른들은 깜짝 놀라 뜯어 말리기 바쁘다. 아이들은 거친 몸싸움 놀이를 하면서 커야 하는데 일상 속에서 자주 저지당하고 억압받는다. 거칠고 억센 부딪침을 통해 어디까지가 몸으로 동무를 밀쳐도 다치지 않는 놀이의 영역인지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처음부터 막아 관계 단절이 생기기도 한다.
(p229~p230)거친 몸싸움이야말로 아이들한테 꼭 필요하고 여러 어려운 상황이지만 허용해야 할 중요한 놀이다. 기다리면서 가까이 지켜보면 아이들의 거친 몸싸움 놀이라는 것이 어떤 선을 넘고 있지 않음이 보일 것이다.
느낀점:
두 형제의 놀이에는 쫓고 쫓기며 적이 되였다가 또 같은 편이 되여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아이의 놀이에는 엄마라는 중재가 있는 공간에선 그래도 자유롭운 편이고 놀이 시간이 그래도 길게 이어지는 편이다. 문제가 생겨기거나 씩씩거리며 전쟁이 날듯 싶다가도 이내 웃으며 상황 종료도 되고 가끔 대장이니 따르라는 지시도 잘 따르기도 혹은 싫다는 상대의 의견도 타협도 하다가 이내 그래! 하며 받아들어 놀이가 이어져 간다. 그것도 부모의 중재나 개입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다른 친구나 어른이 있는 상황이라면 그 놀이는 아니 쫓고 쫓기거나 몸싸움 놀이는 대부분 교양있는 놀이로 바뀌게 된다. 난감할때도 있고 관계가 편한 부모사이라면 서로 “ 괜찮아요~ 놀게 둬요~” 이렇게 기분좋게 부모의 타협부터 이어지고 아이들의 몸싸움 놀이가 허용되는게 되부분이다. 대부분 또래 부모님도 이런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놀이 태도가 아이들의 관계를 이래저래 조종하고 관여하고 있다니 허용이란 한참 먼것 같다.
몇일전 작은 숲놀이터로 친구들이 왔고 인사도 놀이도 다양하며 모두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 진행된 굉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중 청솔모의 죽음이 정성스러운 아이들의 안식처 만들기로 이어지며 그순간 모두가 하나가 되였다. 보여주려고 다시 파해치려는 친구와 그걸 지키려는 아이가 순간 격하게 몸싸움이 이어지고 겨루다 쫓고 쫓기며 울고 웃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엄마들의 지켜봄은 당황스럽고 기다림이 참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마무리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중요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청솔모 무덤을 지키려고 동참했을뿐이였고 웃는건 도망가는 친구와 울며 쫓고 있는 두 친구의 놀이가 재밌어서 웃었다고 한다.
엄마들의 성장이 더 큰 하루고 배움의 하루였던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돌보고 관리하는 능력이 있다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잘 해결하고 놀이는 이어갈것이니 어른들이여 나대지 말자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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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그렇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의 어려움과 고민에 사로잡힐 틈이 없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마당과 골목에 쏟아져 나오는 동무들과 누나 오빠 언니 형들과 어울려 놀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해가 지면 어머니 손에 잡혀 와 밥 먹고 저녁에 또 나가 놀다가 돌아와 코 골며 자기 바빴다.
(p242) “아이들이 놀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바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한껏 제공하고 그것을 아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리라. 놀이가 치유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53)아이를 풀어 줘야 우리도 풀려난다.
우리가 해방돼야 아이도 해방된다.
(p254)
1. 아이는 한가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아이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3. 아이는 함께 놀 수 있는 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4. 놀 틈, 놀 터, 놀 동무가 있어도 허용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5. 하루 두세 시간씩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습니다.
느낀점:
읽다보니 내가 어렸을때 뛰여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내 친구와 우리 동네 구석구석 보이는듯 하며 행복하네요. 온도와 바람과 냄새가 기억날듯 따뜻한 햇살과 햇살피해 동네 큰 버드나무 아래 모인 어르신들까지 영화에서 나올것 같은 그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로 여행간듯 합니다. 오랜 즐거움의 추억이 아직 기억나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 童年으로 기억될가 아이 키우는 저로도 감히 상상이 않가고 뭔가 불안과 안쓰러움이 든다. 골목도 친구도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 안전한 공간도 없으니 대체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지 마음이 급해진다. 그럼 내 기억의 놀이라도 그 기분이라도 즐길수 있게 아이들과 밖으로 강으로 산으로 많이 다니며 그곳에서 놀이 친구가 되여주고 또래 같이 할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정말 감사히 초대해서 같이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 다짐 해본다. 일생에 귀한 그 童年이 가기전에 내가 지금 해줄수 있는것 부터라도 허용하고 함께 해야겠어요.
첫째가 만 3살 둘째가 8개월때 저는 친구들 동원해 글램핑을 했었다 갑갑한 집안이란 공간에서 벗어나서 숨 좀 쉬고 싶었다. 차없어 친구부부가 분당에서 산본까지 마중와주고 저는 애들과 친정엄마 동원해 산본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합류했다. 험난한 여정이라고 과언이 아니지만 내욕심인가 싶었지만 도착해서 놀때는 참 잘 왔다 싶었다. 36개월된 첫째는 캠핑장을 여기저기 이웃집 방문도 척척 하며 통제불가인듯 했지만 손잡고 일일이 따라 다니며 구경 시켰다. 아파트에선 이집 저집 구경이란 불법일수 있지만 캠핑온 새 이웃들은 마당에서 서로 오픈되였으니..계곡에 8개월된 아기는 외할머니가 기저기를 벗기고 엉덩이도 다리도 발도 물에 담궈보게 앉아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게하며 자연을 만끽 시켰다. 밥도 잘 먹고 보채는것 없이 마당에서 놀던 첫째는 저녁 9시쯤 친구들과 같이 합숙함에도 이내 잠들고 “엄마 밖에서 놀다 바로 들어와서 자고하니 좋아~”한다. 난 그기분을 알듯 했다. 8개월 둘째도 통잠을 자는 덕분에 늦게까지 난 친구들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그기억이 힘들지만 참 좋은 추억이 되여 아이가 기억되길 바란다.
어렸을때 일상의 놀이생활이 지금 아이에겐 바쁜 부모의 한번쯤 이탈로 채워진다는게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여 아이와 같이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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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1)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자유놀이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사에게 이른바 '자유'가 없는데 어떻게 교사가 아이의 '자유놀이'를 옹호할 수 있겠는가.
(p264) 비고츠키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와 아이, 아이와 부모, 아이와 교사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없다면 추상의 세계로 나가는 능력은 생기기 어렵다. 그래서 '첫 번째 놀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놀이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 가까이 장난감과 교재교구가 많을수록 실내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유아교육은 실내에서 실외로, 교사의 선택에서 아이의 자유놀이로, 장난감에서 놀잇감으로 대 전환이 절박하다. 이렇게 서서히 꾸준히 '자유놀이'라는 유아교육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만약 유아와 함께 '자유놀이'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유아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개정 누리과정은 정처 없이 떠돌 것이다.
느낀점:
'놀이 밥'을 잘 지어 밥상을 차리고 이웃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들이 몇일전 초1때 반에서 친구들과 동서남북을 접어주었다고 한다. “만들수 있는 아이는 자기뿐이였나 보다”고 말을 하기에 반에서 만들기 수업을 했었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와서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그럼 너는 언제 배웠냐고 다시 물었다.
어린이집 다닐때 함께 차량 탔던 친구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도움을 받아 배웠던걸 초등학교가서 도움 받은걸 배풀었다고 한다.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도움받고 도움 배풀고..” 노래인듯 반복하며 중얼거리는데 기특했다. 코로나로 몇번 등원하지 않아도 초1 추억엔 어쨌던 걱정과 달리 아이는 그래도 작은 사회관계안에서 자기의 선한 관계를 연결하고 있었다는것에 위로되는듯 했다.
칭찬까지 이어졌더니 즐거운지 멋적은듯 하더니 동생에게도 하나 만들며 동생은 손이 작으니 좀 더 작게 만들어야 하기 편하다고 설명까지 더 해 준다. 눈여겨 보고 인정하는 눈길이나 칭찬만으로 아이는 자신감있게 세상을 향하는 힘찬 한걸음 한걸음 잘 내딛는다. 바쁘더라도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감정에 공감해주는게 사랑이고 그게 이 사화에서 양육자의 보호의 태도이기도 한듯 하다.
별거아닌것에 너무 오버스러울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소한것이 큰 감동을 주는것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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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9)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끼어들어야 하나 내버려 두어야 하나 갈등하게 되는 대목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이때 '끼어들기'나 '멈추기'보다는 '바라보기'나 '이어주기'나 '함께하기'의 길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이끌기를 멈추고, 놀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가꿔 주고, 놀이를 이어주고, 아이들이 잘 어울릴 때 빠지고, 아이들이 같이하자고 할 때 함께하는 열린 태도 그 어디쯤일 것이다. 아이와 놀려면 한없이 유연해야 한다. 아이들이 나고나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 것이다.
(p279~p280)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시라. 어려서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결코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다. 놀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이 굳고, 놀이를 빼앗기면 아이의 몸은 무너진다. 하지마! 만지지마! 가지마! 조심해! 위험해! 올라가지마! 뛰지마! 울지마! 마! 마! 마! 이렇게 아이의 놀이와 자유가 멈추면 아이의 피도 숨도 멈춘다. 그 길로 정녕 가야 하는가.
(p293) 부모와 아이는 타인이다. 타인인 아이를 향한 강요는 부모 스스로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좋은 부모는 가장 적게 요구하는 부모이고, 진정 좋은 부모는 요구하지 않는 부모다. 부모가 물러설 때 아이는 나아간다.
(p295) 우리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퍼붓는 공격과 비난 때문에 받을 상처의 크기와 종류는 갈수록 커지고 날카로워지는데 아무도 아이들에게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일어설 힘을 기를 것인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숨이 멎고 막힌다.
(p299) 게임중독은 아이들이 잘못만으로 볼수 없다. 그것은 '놀이밥'을 먹어야 할 아이들의 기본권을 오래도록 가로챈 어른들이 할 말이 아니다. 놀이밥을 꼬박꼬박 먹는 아이들은 불편함과 간섭과 억지가 설령 있더라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회복이 된다. 해로운 것들로 가득 찬 환경 속에 있어도 놀이밥을 먹는 아이들은 건강하고 명랑하다. 놀면 즐겁고 즐거우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웃음과 즐거움은 많은 것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게 돕는다. 놀이는 웃음과 재미와 즐거움을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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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0) 푹 자고 마음껏 놀기!이에 아이들이 해야할 유일한 일이다.
느낀점: 네!아이를 아이답게 키우자.
(p301) 건강한 아아는 늘 바쁘다.
느낀점: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는 엄마의 부름에도 “잠간만~잠~~~깐~~만~~, 나 요고만 하고 갈게~” 너무 진지하게 어른스러운 말투로 반응함에 부름을 멈추고 기다려 줍니다. 네! 바쁜 아이를 기다려 줍시다. 사랑으로 그 사랑스러움을 기다려 줍시다.
(p303) 우리는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쥐가 나면 움직이고 좀이 쑤시면 기지개를 켜고 벌떡 일어나는 살아 있는 몸 말이다.
느낀점: 부모, 교사가 보기에 반듯한 몸이 아닌 아이가 느끼고 감각을 조절하며 관리할수 있는 몸이여야 하고 그런 몸을 아이가 스스로 만들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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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밥' 약속
놀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가지렴.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아.
집도 좋고 바깥도 좋아.
잘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어.
실패도 할 수 있고 다칠 수도 있어.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놀이 박탈의 시대, 아이에게 더 많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P321~P322)
놀이가 비생산적인 활동이고 시간을 그냥 흘러보내는 것으로 보는 시각 또한 뿌리 깊다.
어린이는 불안과 우울과 좌절에서 벗어나 자기통제력, 자기결정권, 자기회복력, 자기적응력을 높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이 삶과 생존의 긴요한 요소다. 가장 중요란 것은 놀이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면의 힘을 응축하는 데 있다.
“놀이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몸에 담는 과정'
(P324)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환경의 실제적 민낯은 COVID-19로 비대면이 강제된 현제 상황과 견주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놀이터에 어린이가 없는, 나가도 함께 놀 친구를 대면하기 어렵기는 COVID-19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이는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가려지고 빼돌려지고 있었고 어린이가 서로 만나기 어려웠기는 마찬가지였다는 말이다.
(p325) “어린이는 앞서 진정 대면하고 놀았는지. 우리는 어린이가 정말 대면하고 놀기를 바랐는지” 물어보는 것에 시작하는 것이다. 배움도 만남이고 놀이도 만남에서 시작한다.
(p328)혹독한 고립 속에서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허용적 놀이환경이 무엇인지 냉철히 살피기를 간절히 청하며, 어린이가 이 복잡하고 단절된 세상의 한 켠에서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라는 행운과 만나 우정을 쌓기를 희망한다. 어린이 가까이 계시는 놀이벗들에게도 권한다. 어린이가 자유놀이와 상상놀이를 잃으면 공감하는 힘도 잃게 된다.
(p331) 위험이 자유로운 놀이활동을 가로막고 있을 때, 놀이는 어떠해야 하는지 갈 길을 몰라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위험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공포에 어린이의 놀이와 자유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마주할수록 어린이는 자신을 지키고 돌보는 힘을 가지게 된다. 아이안에 그 힘이 있다.
비대면만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의 가치 또한 양립해야 한다. 위험이 있지만 유익함이 크고 절실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고 그것은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일상적이고 이동할 필요가 없으며 특별한 놀이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한 놀이 장소인 '홈과 하우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어린이 가까이서 놀이환경을 고민하는 양육자와 보호자에게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홈과 하우스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인데 이 점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COVID-19와 지속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홈과 하우스가 새삼스럽게 놀이터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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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느낀점: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이 13세 글자를 다시 읽을때 눈물이 핑 돈다.
미안함, 감사함, 그리고 대견함과 이 소중함을 다시 깨우치고 발견하게 해준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란 많은 감정으로 뭉클했다.
아이때 않놀면 언제 놀지? 스스로 다시 되물어 보니 할말이 없잖아요?
않된다고만 해놓고 뭘 해야할지 눈치만 보다 크고 나면 뭐라도 하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가? 원망하고 있었을가? 하니 마음이 아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