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이도 놀고 우리도 논다면 그것은 자본을 향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길에 들어선 것이리라.” (p253)
“기본놀이는 어린이 모두의 보편적 사회적 권리이며 심사나 선별없이 모든 어린이에게 도착해야 할 권리다.” (p326)
2. 느낀 점
딸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주 꺼내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딸아이 나이 때 내 모습’이다. 뭔가 대단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딸아이를 야단칠 때 그 수위가 적당했는지를 살펴볼 때 나는 딸아이 나이에 내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며 내가 얼마나 무모한 요구를 딸에게 하는지 느끼곤 한다. 다시 말해 나도 지킬 수 없는, 지키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는 당연한 듯 요구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소위 ‘날라리’ 였다. 빽바지 교복에 구두를 시고, 심하게 꺾인 U자 뒤집힌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물론 불량 써클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울리는 친구 10여 명이 늘 붙어 다니며 사고도 치고 공부도 같이했다. 그 시절에는 전자 오락기게가 처음 대중화되어 ‘오락실’이란 것이 동네 마다 생겼다. 지금은 그 자리를 PC방이 차지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신나게 ‘갤러그’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부 선생님들이 들이닥쳤다. 나와 친구들 3명은 오락실 주인 방으로 튀어 들어가 이불을 쓰고 들어 누웠다. 밖에서는 우당탕 퉁 탕, 윽 윽... 두들겨 맞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있었다.
몇 십분 뒤 바깥은 조용해 졌고, 주인아저씨는 웃으며 이제 끝났다고 알려주셨다. 우린 마치 비밀 기지에 잠입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나온 특공대원처럼 의기양양하게 밖을 나왔다. 그 긴장감 속에서도 우린 히히덕거리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 때의 감정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서 나는 일부러 교무실을 들렸다. 교무실에는 어제 오락실에서 걸린 아이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그 이후로 몇 번 오락실을 가고 발길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하러 그런 가슴조리는 일을 내 돈 주고 해야 한단 말이냐’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밖에 나는 말하기 부끄러운 수많은 사고들을 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건강한 인간으로 잘 자랐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딸을 보며 끝없는 걱정과 불안에 휩쌓일까? 그 때 균형을 잡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내 어릴 적 추억이다.
이렇게 어릴 적 기억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거울이며, 오늘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힘을 조절하는 변속기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은 오늘을 사는 힘이다. 만약 이 기억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득할까? 무엇을 딸아이를 이해할까? 책으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그것은 내 어릴 적 기억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도구, 확신을 위한 지원 사격이지, 타당성과 확신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 참된 자유와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의 의미다. 그처럼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다시 말 해 정답만으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되기 위해 나는 또 우리 아이들은 ‘위험해 보이는’ 경계 주위를 넘나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경계의 존재(위험)를 스스로 익히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딸아이를 야단치며 나는 내 딸이 오류 없는 정답만으로 이뤄어진 삶을 살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류 없이 정답만으로 작동하는 존재는 무엇인다. 우린 그것을 ‘로봇’이라고 부른다. 공부 잘하는 로봇, 성공하는 로봇, 공부도 악기도 연주도 심지어 놀이도 완벽하게 잘하는 로봇. 그러나 로봇을 로봇으로 다룰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혼이 깃든 생명을 로봇처럼 다루면 결국 망가지게 된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젊은 부모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모습이 마치 로봇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은 메말라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고통이 보이지 않고, 아이의 분노와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 최근 부모를 통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은 이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오려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회상이 아니라 지금 어린 아이처럼 경험하는 기회가 필요해 보인다.
3. 질문 :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감정이 메마른 부모들에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 외에 어린 아이처럼 경험하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말씀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특히 7살 이전은...ㅠㅠ 저도 지금 어린 아이처럼 즐거움을 풍성히 누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4장 놀이는 아이 안에 있다 최재훈
1. 나누고 싶은 문장
“나는 어릴 때 놀던 힘을 꺼내 오늘을 산다.” (p239)
“아이들이 놀기에 좋지 않은 날은 없다.” (p242)
“만약 아이도 놀고 우리도 논다면 그것은 자본을 향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의 길에 들어선 것이리라.” (p253)
“기본놀이는 어린이 모두의 보편적 사회적 권리이며 심사나 선별없이 모든 어린이에게 도착해야 할 권리다.” (p326)
2. 느낀 점
딸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주 꺼내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딸아이 나이 때 내 모습’이다. 뭔가 대단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딸아이를 야단칠 때 그 수위가 적당했는지를 살펴볼 때 나는 딸아이 나이에 내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며 내가 얼마나 무모한 요구를 딸에게 하는지 느끼곤 한다. 다시 말해 나도 지킬 수 없는, 지키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는 당연한 듯 요구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소위 ‘날라리’ 였다. 빽바지 교복에 구두를 시고, 심하게 꺾인 U자 뒤집힌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녔다. 물론 불량 써클에 가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울리는 친구 10여 명이 늘 붙어 다니며 사고도 치고 공부도 같이했다. 그 시절에는 전자 오락기게가 처음 대중화되어 ‘오락실’이란 것이 동네 마다 생겼다. 지금은 그 자리를 PC방이 차지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신나게 ‘갤러그’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부 선생님들이 들이닥쳤다. 나와 친구들 3명은 오락실 주인 방으로 튀어 들어가 이불을 쓰고 들어 누웠다. 밖에서는 우당탕 퉁 탕, 윽 윽... 두들겨 맞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있었다.
몇 십분 뒤 바깥은 조용해 졌고, 주인아저씨는 웃으며 이제 끝났다고 알려주셨다. 우린 마치 비밀 기지에 잠입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나온 특공대원처럼 의기양양하게 밖을 나왔다. 그 긴장감 속에서도 우린 히히덕거리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 때의 감정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서 나는 일부러 교무실을 들렸다. 교무실에는 어제 오락실에서 걸린 아이들이 엎드려뻗쳐를 하고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그 이후로 몇 번 오락실을 가고 발길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하러 그런 가슴조리는 일을 내 돈 주고 해야 한단 말이냐’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밖에 나는 말하기 부끄러운 수많은 사고들을 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건강한 인간으로 잘 자랐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딸을 보며 끝없는 걱정과 불안에 휩쌓일까? 그 때 균형을 잡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내 어릴 적 추억이다.
이렇게 어릴 적 기억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거울이며, 오늘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힘을 조절하는 변속기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은 오늘을 사는 힘이다. 만약 이 기억이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득할까? 무엇을 딸아이를 이해할까? 책으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그것은 내 어릴 적 기억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도구, 확신을 위한 지원 사격이지, 타당성과 확신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 참된 자유와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의 의미다. 그처럼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다시 말 해 정답만으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이 되기 위해 나는 또 우리 아이들은 ‘위험해 보이는’ 경계 주위를 넘나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경계의 존재(위험)를 스스로 익히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인간이 되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딸아이를 야단치며 나는 내 딸이 오류 없는 정답만으로 이뤄어진 삶을 살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류 없이 정답만으로 작동하는 존재는 무엇인다. 우린 그것을 ‘로봇’이라고 부른다. 공부 잘하는 로봇, 성공하는 로봇, 공부도 악기도 연주도 심지어 놀이도 완벽하게 잘하는 로봇. 그러나 로봇을 로봇으로 다룰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혼이 깃든 생명을 로봇처럼 다루면 결국 망가지게 된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젊은 부모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모습이 마치 로봇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은 메말라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고통이 보이지 않고, 아이의 분노와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 최근 부모를 통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은 이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단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오려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회상이 아니라 지금 어린 아이처럼 경험하는 기회가 필요해 보인다.
3. 질문 :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4장-놀이는 아이안에 있다.
-함께 하고 싶은 문장
아이들이 타고나는것들이 있다.
하나는 놀이이고 또 하나는 부지런함이다.
아이들은 이 둘을 합쳐 놀이에 도가 트는이다.
-느낀점
하루에 1~2시간만 더 푹 잤으면..라는 너무 현실적신 꿈이 생기기도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뭐가 이렇게 배울게 많은지..
어느 순간 일상과 더불어 모든 기준은 아이들로 바뀌게 되었다..
청소,설거지는 아이들의 건강활동
게임은 아이들의 놀이
좋은식당은 아이들이 잘먹는곳
사색은 아이들과 대화로
아이들의 놀이는 가끔 어른들의 시선에서 보면 아슬아슬 불안하기 짝이없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중이니 그게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높은곳을 올라가 뛰어내리기도하고 애지중지한 물건을 부수기도라고 위험한도구를 만지기도하고 현실적으로 이 모든것을 따라다니며 일일히 컨트롤하긴 어렵다.
컨트롤 하더라도 과연 그게 아이들에게 좋은일일까?라는 생각도든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다칠수도있다.
아이도 부모가 왜 위험하다고 하는것인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게된다.
사실 우리집에선 딱히 허용되지 않는 도구는 없는거같다.7살아들이 칼을 사용하다 한두번 벤적이있다.
사고는 정말 한순간이다.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이 일을 통해 아이는 커터칼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수있었고 주의해야한다는점까지 배울수있었다.
덕분에 칼로 장난을 치는일이 없어져 안심할수 있었다.
또 가정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대라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향한 나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마치 직장에서 만난 고객을 대하듯..
점점 아이들의 취향을 지지하고 존중하게 되었다.간혹 한 겨울에 여름신발을 신는다든지 아들이 누나옷을 입고다닌다든지 신발을 짝짝으로 신는다든지.
정말 우리의 기준에서는 난해한 취향도 있었지만 혹여나 아이의 상상력이나 가능성을 차단하게 될까봐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다보니 그 다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아이의 마음부터 알아보는게 중요하다는걸 알게되었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인내심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최대한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질문
우리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지??